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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셀리는 인사하면서 나갔다.

"먼 거리에 피곤할 텐데... 잠시 이 집에서 머물고 있으세요. 친구들을 풀었으니 금방 집은 구할 꺼에요. 그리고 내일부터 일을 도와 주면 되요."

"로셀리 아까 말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래요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미켈란젤로씨라면 분명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을 꺼에요. 그럼 잘 자요"


문을 닫으면서 

'로셀리는 우리가 묵었던 호텔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바뀐 것이 아니라 없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지하철, 트램, 현대식 건물들... 하다 못해 핸드폰을 들고 가는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다 바뀌었다. 축제장에 온 것 같은 옷 차림들...' 

순간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밖의 풍경을 내다 보면서 아내는 물어왔다.

"아까 로셀리가 했던말 생각나요?"

"무슨말?"

"그 분이 미켈란젤로라고 했잖아요. '다비드'상을 만든..."

"정신 빠진... 아니 말은 맞지... 그러니까 다비드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지...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로 사람 혼을 빼놓고서는... 그래 가방! 잃어 버린 물건 없나 찾아봐!!! 아까 봤지 카운터에서 주인장이랑 웃으면서 말하던 것... 어떻게 우리 묵은 호텔을 알고 안내했지? 이렇게 한 방 먹은 건가?"

"글쎄... 좋은 사람 같던데..."

"당신은 그래서 문제야. 미켈란젤로라는 무슨... 건축회사 감독관이나 되나 보지. 아무튼 한번 지갑이랑 살펴보라니까! 여권 지갑 신용카드..."

지퍼를 열던 아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든 것은 그대로 있어요. 다만 요엘이의 분유가 터져버린 것을 빼면요."

"맞아 관광 가이드 책을 좀 줘봐. 로셀리 이 사람 우리를 얼간이로 알아겠다."


책을 펼쳐들고 87페이를 펴는 순간 현기증이 생겼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원래 작품은 31세의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디요(33세)가 참여해서 완성했다. 후에 루카 시뇨렐리도 합류해서 프레스코 작업을 도왔다.  벽 전체를 유리창 아래 격식과 일치하도록 6개 구역으로 나누고 한 구역에 한  명의 화가와 조수들을 배정해서 폭 6m, 높이 3.6m 크기의 그림을 완성했다. 본당 한 쪽은 모세 일대기 장면과 맞은 편은 예수의 일대기를 그렸다. 밝은 색 옷 차림을 입은 역대 교황 32명의 초상화를 그리고 천장은 큐폴라 양식에는 흔한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주제로 그렸다. 천장을 작업한 사람은 피에르마 테오 다멜리아이다.


"피에르마 테오 마멜리아... 아까 편지를 보냈다는 사람?"


계속 읽어 내려 갔다.


1508년 5월 10일 미켈란젤로는 작업을 하기로 계약을 했고, 1512년 10월 31일 완성했다. 4년 4주 만에 완성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걸작으로...


읽는 것을 멈췄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여보, 저 사람들 봐요. 지금 무슨 행사를 하나 봐요. 모두들 중세 시대 옷들을 입고 나왔어요. 작년 여행에서도 그랬잖아요. 체코에서 체스키크롬로프를 갔을 때 기억나요? 그때도 아마 6월 이었죠?"

"그런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로셀리는 열심히 제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그들의 작업을 열심히 바라보는 어제 보았던 사나이가 있었다. 어깨가 딱 벌어진 단단한 체격이었지만 몸매가 좀 이상했다. 네모진 이마에는 주름이 많고, 검은 머리는 헝클어진 고수머리였다. 조그마한 눈은 슬프게 보였다. 턱수염은 그 외로움을 감추는 듯 했다. 걸을 때 등은 굽고 배가 나왔다. 그리고 보니 가이드 책에 나온 얼굴과 비슷했다.


마르첼로 베누스티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릴 무렵의 미켈란젤로의 초상>, 1535년경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



사람들의 긴 행렬에 합류하여 계단을 내려 가고 또 내려갔다.  탄성과 웅성 거리는 소리가 문을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의 결과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질 시간이었다. 문을 통과 하기도 전에 우리의 고개는 뒤로 젖혀 졌다. 미켈란젤로가 몇 년 동안 했을 몸 짓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었다.


문을 들어 선 순간


시끄러운 작업 소리가 천장에서 울리고 있었다. 석고들의 파편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오래된 먼지들과 석고 가루들은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도 모질랐는지 이방인의 호흡 기관에도 가득 채워갔다. 민감해진 기관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연신 재채기를 했다.


"쿨럭, 쿨럭!!!"


재채기 소리에 위를 뚫어져라 바라 보던 한 사나이가 뒤로 돌아 보았다.

머리에 먼지가 가득 쓴 꼴이 제빵공처럼 보였다.

한참을 쏘아 보더니... 다무진 입술을 열었다.


"자넨가?"

한심스런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얼마전에 편지는 받았네만... 너무 말랐군! 이런 애숭이를 추천하다니...."


"어이. 로셀리! 이리 좀 내려오게... 이 친구 집 좀 구해 줘야 겠네."

"지금이요? 지금 일이 태산처럼 쌓인 것이 안 보이나요?"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 만큼이나 잘 하는 친구도 없지. 허허."


로셀리는 천장의 별 하나를 막 떨어뜨리던 참이였다.

마르텔로를 내려 놓고 한참 후에 내려왔다.


작업 모자를 벗어 온 몸에 붙은 석회 가루를 털고는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사람들은 저를 로셀리라고 부르죠..."

"전 피터에요."

"음 좋은 이름이군요. 내기 하나 할까요?"

"......"

"당신 집을 구하는 일과 저 천장 작업 중에 어떤 것이 빨리 끝날지 내기해요?"

"집이라뇨? 우린 그냥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보려고 온 것 뿐이에요?"


"피터... 알고 있네. 천장화를 보러 왔겠지." 계속해서 그는 말을 이어 갔다.

"피에르마 테오 다멜리아로 부터 편지를 받았네... 편지를 통해 천장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애시당초 붓을 들어서는 안되지. 그리고 자신의 그림 위에 어떤 그림이 덧칠해 질지 무척 궁금해 하더군. 그래서 한 사람을 보낸다고 했지. 자 보게나. 별들이 떨어지고 있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여기는 어디고? 또 그 해괴한 옷차림, 그 말투는 좀 처럼 적응이 안되는 군요. 시스티나 예배당이 아닌가요?"

"허허. 좀 충격이 큰가 보군. 나도 잘 알고 있네. 그가 반짝이는 별들을 수 놓기 위해 밝고 푸른 바탕색에 황금별을 새겨 넣었다는 것[각주:1]을... 더욱이 가장 밝고 비싼 금색과 군청색을 풍부하게 사용 했더군. 하지만 나는 별에 별로 관심이 없다네... 미안하지만 기존 프레스코는 흔적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뜯어 낼 계획이네... 비록 일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말일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셀리 말을 이어갔다.

"덧 없는 인생이여~ 우리의 발자국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겠지요?"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저요? 전 아까 로셀리라고..."
"당신 말고... 당신 말이에요. 도대체 누구죠? 그리고 여긴 어디죠?"


그때 아내가 조용히 내 옷자락을 잡아 당기면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가르켰다.

핸드폰의 날짜는 크고 선명하게 1508년 6월 13일 오후 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혹시 지금 날짜가?"

"네 기억으로는 한 달 하고도 3일 전에 이 일을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옆에서 로셀리가 말했다.

"미켈란젤로씨 7월 말까지 철수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요?"

"그래도 자네가 서둘러 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미안 하네 피터. 충격이 크겠지만 스승에게는 그대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겠지? 그리고 우리 일을 도와 주는 조건으로 자네의 합류를 허락했네. 자~ 로셀리! 빨리 아이와 숙녀 분에게 좋은 집을 구해 줘야 겠지?"

"분부대로 해야죠." 로셀리는 어깨 위에 먼지도 마져 털었다.


등뒤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 별은 걱정 말게나... 아이 방에 지금 사라져가는 별들을 그대로 옮겨 줄 것을 이름을 걸고 약속 함쎄... 내 이름은 미켈란젤로일쎄."


로셀리는 금세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하~ 내 발명품 도르레를 이렇게 아기 바구니에 달았군요. 멋진걸요!"


유모차를 자기 품으로 잡아 당기면서 앞장을 섰다.

멍하니 서 있는 우리를 향해 고개짓으로 따라 오라고 했다.

  1. 큐폴라(cupola)는 작은 건물의 돔과 같은 양식의 둥근 천장을 뜻한다. 왕관을 씌운 듯한 큰 지붕이나 돔 모양의 큐폴라는 실내에서의 전망을 좋게 하기 위해서, 또는 햇볓이 잘들고 공기의 순환을 좋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 단어는 작은 컵(라틴어 큐파)를 엎어 놓은 모양의 둥근 천장을 나타내는 저 라틴어 큐풀라(그리스어 큐펠리온에서 유래한 고전 라틴어 큐펠라)로 부터, 이탈리아어를 경유해서 들어온 단어이다. 큐폴라는 큰 건물의 부속된 작은 건물들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 건축물은 큰 지붕보다 더 높이 있어 자주 종탑, 등실, 또는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그 건축물은 탑, 첨탑, 터릿[3]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인도 건축에서 볼수 있는 챠트리가 큰 구조의 꼭대기에 사용됐다면 큐폴라로 정의한다. 큐폴라는 고대 로마 건축에서 발견된 장치인 오큘러스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비바람에도 견딜수 있는 큐폴라는 북유럽의 습윤한 기후에서 우세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력이 컸다. 참조[http://ko.wikipedia.org/wiki/%ED%81%90%ED%8F%B4%EB%9D%BC] 큐폴라 양식에는 흔한 그림 주제였다. [본문으로]


다가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그 '장소'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지도도, 직감도 필요하지 않았다. 수 많은 깃발들은 마치 고지 점령을 이끄는 기수들 같았다. 물론 깃발들은 인파로 인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전진할 뿐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로 한 일행을 이끄는 깃발을 보았다. 순간 우리는 그 깃발에 매료되어 그 일행 꽁무니를 따라 붙었다. 이미 지친 사람들을 뒤로 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다. '모세의 기적'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저지도 없이 입구쪽으로 돌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깃발을 든 기수병은

길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병사에게 거침없이 다가섰다. 

그리고 왕의 명령서를 꺼내 들었다. 저건 뭐지???


온라인으로 단체 예약[각주:1]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소속 불명의 우리 가족 이름은 있을리가 없었다.


좀 더 정보를 알았다면 그래서 온라인 예약을 알았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니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여유를 가지고 줄을 서지 않았을까?


이미 눈으로 그 길이를 확인한 우리로써는 되돌아 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순간 유모차를 무기로 들이 밀기로 결정했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이 말만을 외치면 앞으로 나아갔다.

가슴이 떠질 것 같은 우리 가족들의 만행을 여유로운 사람들이 기꺼이 눈 감아 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묵인했다기 보다는 아들의 위한 배려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가 주문해서, 바치오 폰텔리가 설계를 했고 조반니 데 돌치가 건축했다. 

1483년 8월 15일에 완성(실제 공사의 끝은 1481년으로 본다)을 했다. 


예배당은 길이가 40.23미터, 폭은 13.40미터, 그리고 높이는 20.70미터로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파괴한 '솔로몬의 성전'의 세로 높이 2배 가로 3배의 크기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신앙의 형태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왜냐하면 거장들의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 '기를란디오', '코시모 로쎌리', '씨뇨렐리', '라파엘로', '페루지노', '핀투리끼오', 그리고 '미켈란젤로' 등등 당대의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량을 그곳에서 뽐냈으리라. 


사실 완공 당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없었다. 


21년이 지난 후 1504년 지반침하로 남쪽 벽이 바깥으로 기울면서 천장이 갈라지고 말았다.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지반 이동을 억누르고 천장 벽돌과 마룻 바닥에 수십 개의 쇠막대기를 박아 넣어 더 이상의 균열을 막았다.

1504년 가을 다시 개방했지만 균열로 벽돌을 채우고 석고를 바른 탓에 천장화의 일부(북서쪽)가 비뚤 거리는 흰선을 그대로 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사건을 계기로

걸작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1. 온라인 정보(http://mv.vatican.va) 온라인 예약(http://biglietteriamusei.vatican.va/musei/tickets/do?weblang=it&do)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프린터해서 가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 [본문으로]


"이런"


어제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그 동안의 여정이 힘들었던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호텔 아침 시간도 끝날 무렵에서야 겨우 일어났다. 이미 바닥에 흘러 내린 이불을 들어 올리면서 침대 난간에 걸터 앉았다. 게으름에 대한 댓가는 어김없이 후회로 밀려왔다.


'어제 그 일정을 소화했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 좀 더 비용이 들더라도 바티칸에 숙소를 잡았어야 했는데' 


옆에는 영원한 여행의 동반자 아내와 아들이 곤히 자고 있다. 어지럽게 벗어 놓은 흰 색 운동화는 그 빛깔을 잃어 버린지 오래다. 가방은 그대로 유모차에 걸린체 밤새 힘들게 있었다. 동전과 지갑 그리고 물병이 어지럽게 테이블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깨워야 겠지? 이 여행도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때로는 단순함이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너무나 단순, 명료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할 시간 조차도 없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힘든 상황 가운데 있던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거장의 작품을 통해 뭔가 얻고자 했던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다짐, 새로운 출발.


[각주:1]


늦었지만 서둘렀다. 하지만 마음뿐 아무도, 아무것도 따라 주지 않는다. 지하철 역에서 들어 서면서 어제 이미 여러번 책과 지도로 답사를 했지만 머리가 백지장이다. 가방에서 허둥 지둥 지도를 펴들고, 익숙하지 않는 길들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다 놨다 표지판과 지도를 연신 반복한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네이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면 편했을 텐데... 그 좋은 문명의 기계들을 뒤로 하고 이 무슨 지도람. 연신 이렇게 서둘러야 했던 이유들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사실 숙소를 나오기 전부터 화가 난 있던 상태였다. 혼자서 여행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 계획, 비행기 표를 구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지도를 숙지해야 하고 방문하는 곳에 대한 지식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것들을 준비 하려면 고단한 일정에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예약한 숙소에 대한 불만이 터지기라도 하면 미안함 보다는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함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왜 이런 생 고생을 하지? 자기가 준비하지?'


"더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 나야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당신은 뭐하는 거야!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

"내가 일부러 그랬나? 피곤하니까 그렇지."

"아 그만해... 서둘러 시간 없어."
"밥은...?"

"밥은 무슨? 시간 없어..."

"얘는"

"당신이 가서 빵 싸오든지..."

"......"


유모차를 들어 줘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내는 뒤에 처져서 따라 오고 있었다. 그 적막한 상황을 무마한 것은 역시나 아들 요엘이었다. 비둘기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요엘은 빵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1. 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486/202/004/world.jpg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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