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바티칸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 

[이탈리아 바티칸 여행 미켈란젤로 작품]

이탈리아 로마 여행 그 가운데 바티칸 사원은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관광 코스이다. 나라 안에 나라가 있는 특별한 곳이다.
카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그리고 교과서에서 보았던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가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 가족도 교과서에서 봤던 피에타와 천지창조를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유모차를 끌고 먼저 베드로 성당을 향했다.

엄청난 규모의 회랑과 안으로 광장이 있었지만...
성 베드로 성당

수많은 인파로 인해 오히려 그 크기가 작아 보였다.

광장을 감상하기도 전에 줄이 쌓이고 쌓였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줄이 밀리고 밀렸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단한 보안검열을 하고 있었고,

언제쯤 들어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탈리아 답지 않게 빠르게 진행 되었다. 


전문 가이드가 없었고,

우리는 책자를 들어다 보았다. 여기서 뭐를 봐야 하지?


아 그래  꼭 보아야 할 작품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피에타'가 있다.


피에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피에타'라고 부른다.
그 뜻은 이탈리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 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인 추기경이 
로마에 머물고 있던 25살의 청년 미켈란 젤로에게 의뢰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지만 미켈란젤로에게는 

오히려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익숙하다는 것은 이미 생각이 굳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기존의 많은 고딕 조각들은 부자연스런 형태였다.

죽은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 무릎 밖으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리스도가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켈란젤로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그리스도의 몸을 오히려 작게 표현했고, 

옷을 풍부하게 함으로 부자연스러움을 제거했다.


이부분 이해하기 위해

엄마가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될 것 같다.

젖먹이는 아기는 엄마의 품에 꼭 안겨서 자연스런 모습이 된다.

하지만 젖먹이가 아닌 청소년이라면 아니 더 큰 청년이라면

엄마가 안고 있기에도 벅찬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조각한다면 부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부자연스러움을 옷의 풍부한 표현으로 감싸안았다.

또한 옷은 하나님의 보호와 현실적 위협으로 부터 수호해 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옷자락은 죽은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위대한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도 많은 추측과 해설들이 오간다.

가령 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젊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표정이 죽은 사람 같지 않는 것, 마리아의 표정에 대한 여러 해설들이다.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각자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보게 만드는 것 같다. 


피에타상의 또 다른 숨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심히 살펴봐야 발견할 수 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두른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MICHEL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 BAT"(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

그 뒤로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않았다고 하는데

그 만큼 완성도가 놓아 이름을 새겼는지, 아니면 젊음의 혈기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피에타



성당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아크릴 유리로 보관되어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의 웅장함에 고개를 들고 천장만 쳐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가다 지나칠 수 있다. 


항시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 꼭 가보자. (관광지에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이유가 분명있다. 필히 그런 곳은 가보자.)

소형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지만 육안으로 봐야 한다면 솔직히 너무 멀다.

본인의 시력이 좌우 1.0인데 보기 힘들었다는...



※ 피에타의 수난(제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자비를 베푸소서!!!)


상을 이동하면서 마리아의 왼손가락 4개가 부러졌다.1736년 주세페 리오니(Giuseppe Lirioni)가 보수했다.

1972년 5월 21일 정신병환자인  라즐로 토스(Laszlo Toth)가 성당에 들어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하면서 망치로 조각을 내리쳤다. 구경꾼들이 부서진 조각의 파편들을 가져가서 일부의 파편들만을 회수할 수 있었다. 결국 마리아의 코를 포함한 많은 부분은 사라졌다.







[시스티나 예배당] - '펜티멘티'(후회)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나님도 노아도 그리고 미켈란젤로도 말이다.  노아의 홍수를 그리면서 수 많은 수정 작업이 반복되었다. 4주 이상이나 걸렸다. 이제 시작인데 작업량은 기를란다요의 하루 평균 작업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처음 작업이라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곰팡이라는 복병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 12미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야 했다. 비계 위에 5-6명이 누워서가 아닌 직립한 채로 작업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계속되는 수정 작업에 점점 대화는 사라졌다. [노아의 홍수]에 새겨진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표정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미켈란젤로는 그런 우리의 표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천정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림이 완성하기 까지 무려 열 댓 개나 뜯어 내야만 했다. 프레스코에서 수정(펜티멘티)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덧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석고가 마르기 전이라면 긁어내면 되지만 일단 다 마르고 나면 망치와 끌을 통해 1조르나타의 석고를 통째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탐욕스런 '브라만테'의 야욕에 넘어간 것이다. 오만하고 엄청난 포부와 욕망을 가진 그의 이름은 이탈리어로 '굶주림'이었다.


어릴 적 구름 다리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팔에 손톱 만큼의 금이 가서 깁스를 했는데 석고의 빠른 응고와 한번 굳어 버린 석고의 단단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깁스한 팔은 친구들 사이에서 무적에 가까웠다.


아무튼 무려 열 댓 개나 뜯어 내야만 했다. [노아의 홍수] 장면 가운데 왼쪽 부위 반 이상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 처음부터 너무 큰 착오와 시련의 연속이었다. 자세들이 '카시나 전투'의 자세와 유사하며 '켄타우루스의 전투'와 비슷했다. 그 만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 한 쪽 바위 모서리에 무기력하게 축 늘어진 젊은이를 노인이 두 팔로 붙잡는 장면은 그런 미켈란젤로의 심정을 잘 나태내는 것 같았다. 모두들 힘든 작업이었다. 다만 위안이 된다면 [노아의 홍수] 그림 위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이라는 점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처음 부터 베네치아가 아닌 피렌체의 재료를 고집했다. [노아의 홍수]에 표현된 하늘과 물은 현미경으로 보면 가루도 된 유리파편과 공기 방울을 볼 수 있다. 스말티노라고 하는 이것은 제수아티 수도사들이 제조한 것이다. 코발트가 함유된 색유리를 빻은 것이다. 코발트는 부식성과 유독성분 비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살충제로 쓰일 정도로 독한 것이다. 아무나 제조할 수 없는 재료였다.

미켈란젤로는 안료들을 직접 빻아서 사용했는데 붓은 거의 거세당한 수퇘지의 억센 털이 였다. 그의 고집스러움이 작업을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하나 둘 고개를 젖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지켜 볼 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당시 사용한 기법은 붓에 안료를 가득 묻힌 다음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어 넣고 짜서 여분의 물기를 제거해서 칠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료를 물에 코팅한 것 같이 묽게 하고 붓에 잔뜩 묻힌 다음 반원 공간에 칠해 고곳에서 수채화 같은 투명한 효과를 냈다.

노인의 부축에 힘을 얻었는지 미켈란젤로는 반원 공간에서는 밑그림 없이 바로 그림을 그려넣었다. 조그마한 도화지가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무런 보조 기구도 없이 오로지 손으로 그렸다. 첫 번째 반원 공간은 단 3일만에 끝냈다. 인물의 키가 2미터에 이르는 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척척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1980년 복원을 통해 그 동안에 쌓인 먼지와 때를 제거하고 나서 발견한 색채가 있다. [노아의 홍수]아래 스팬드럴 중 하나에는 오렌지색 머리와 연한 핑크와 오렌지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선명한 주홍색 옷을 입은 늙은 남편 곁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500년간 양초와 오일 램프가 타면서 생긴 불포화 지방이 여러 겹 코팅하면서 변질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족보들을 그렸다. 혹 천지창조가 순서대로 그렸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방법에 따라 퍼즐을 완성하듯이 그려 나갔다. 때로는 그를 따라 가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천재의 영감을 알 수 없는 우리가 당해야하는 고충이었다.

그러나 옆에서 내가 지켜 본 결과 철저하게 미켈란젤로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어제 나눴던 이야기, 어제 보았던 인물, 어제 보았던 하늘의 색감... 그것들은 다음날 작업이 현장이 되었다. 즉 이미 미켈란젤로의 머리에는 시스티나 성당의 모든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밑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억매이지 않고 또 다른 자세와 표정이 떠오르면 곧 바로 그려 나갔다. 그리고 그런 영감은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과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족보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요시야 왕은 열왕기하 23:25절을 배경으로 한다. 창문위의 스팬드럴에 그려졌는데 아내가 아기를 안고서 앉아 있다. 남편은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인 채 몸을 쭉 펴고 있다. 가정에 사소한 입씨름을 벌린 결과 아내가 외면해 버리고 아이와 씨름하는 남편의 모습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예수님의 초상화에는 움직이는 자세의 91명의 인물이 그려졌다. 여성은 25명이다.
머리를 빗거나, 뜨개질을 감고, 옷감을 자르거나 잠에 빠져 있고, 아이를 달래거나,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다.
온화한 요셉과 행복에 겨운 성모 마리아와는 다르게 지치고 독기 서린 부부들이 몹시 거칠고 불운한 삶을 영위하는 장면으로 표현했다.

일곱 선지자의 첫 인물 스가랴도 그려 넣었다.
4미터 키에 진한 단풍색과 초록색 예복을 두르고, 그 위에 눈부시도록 파란 깃이 붙은 황토색 셔츠를 걸치고, 자줏빛 감도는 핑크색 표지의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다. 후원자 로베레 가의 문장(뒤엉킨 오크 나무) 위에 스가랴를 그렸는데 로베레 가의 상징하는 파랑과 금색 겉옷을 그린 것은 마치 스가랴를 교황과 흡사하게 그렸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왔다. '올려다 보는 것과 내려다 보는 것'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항상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다른 각도로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밑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밀려 왔다. 제단으로 부터 검은 손길이 뻗어 오더니 발목을 감고 돌았다. 재물로 원하고 있는 듯 했다. 겨우 난간을 붙잡고 끌려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힘주어 눈을 감아 얼굴의 모든 근육들을 눈 꼬리에 집중 시켰다.


"이보게 조심하게! 바르나 다 시에나[각주:1] 꼴이 되기 싫으면 말일세"

그 소리에 검은 손길을 사라지면서 순간 정신이 들었다. 


한바탕 놀리는 야유들이 쏟아지고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모두들 고개를 젖히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옆에 있던 미켈란젤로는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깨로 물어왔다. 

"완전히 거짓말이었다고."
"뭐가 말인가?"

"비계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프레스코를 했다는 말이요."


미간을 찌푸리면서 "누워서 작업을 한다고?"

"네! 서서 한다는 것은 너무 고된 노동이라 누워서 했다고 했죠!"

"얼간이들이군. 누워서 한다고? 프레스코를? 프레스코가 뭔지도 모르는 얼간이군!!! Stare Fresco!!!"[각주:2]


"그런데 누가?"

"사람들이요"

알듯 모를듯 고개를 흔들면서 작업은 계속되었다. 한참 후 다시 내 말이 생각났던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워서라~ 음 좋은 생각이군."

나 또한 누워서 작업 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넓은 천정을 다 그릴려면 오랜 시간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집에서 하루 도배만 해도 뒤목이 뻣뻣해 오는 것을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뭐 직업상 아무리 달련 되었다고 하더라도 몇 달을 아니 몇 년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워서 하려면 프레스코 기법을 다시 고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레스코는 기존의 마른 석고 위에 인토나코라고 하는 새로운 석고를 흙 칼로 반 인치 두께로 덧칠을 한다. 인토나코는 석회석과 모래로 된 부드러운 반죽으로 표면은 안료의 침투가 가능한데, 표면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방수 기능을 갖게 되면서 흡착된 안료가 콘크리트 바깥으로 새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인토나코는 바르고 한 두 시간이 지나면 외피가 형성 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되는데, 외피가 형성 되기 전에 사전에 그려진 밑 그림을 작은 못으로 고정을 시켜 놓는다. 밑 그림은 소묘 선을 따라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안으로 목탄 가루를 뿌리거나 색 가루 주머니를 '탁탁' 치면서 대략적인 선을 남기고 붓으로 윤곽을 그려 나간다. 이 기법을 스폴베로(Spolvero)라고 한다. 다른 방법은 초크 선을 따라 철필로 그어서 석고에 자국을 남기는 방법이다. 보다 신속하게 윤곽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당신도 '프레스코'를 제대로 해 본적이... 제가 알기론 당신도 처음이라고"

"그렇지! 맞아! 나도 프레스코에 얼간이지..." 


붓을 내려 놓더니 손을 내 앞으로 뻗으면서 말을 했다.

"이 손을 보게나. 붓을 잡을 만한 손은 분명 아니지... 고된 작업으로 인해 군살들이 박혔다네... 하지만 이 손은 한번도 날 속인적이 없다네. 하나님은 그 손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했다네. 정직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하나님은 축복하실 걸쎄..."

"하지만 아무리 정직해도 세상은 항상 성공할 수 만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후회하나 보군?"

"그게 성공과 무슨 상관이 있죠?"
"후회가 없다면 성공이든 실패이든 무슨 상관이 있나. 후회는 두려움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지."

"그럼 이 일을 맡게 된 것에 후회하신적이 없으세요? 참으로 고되고 처음 하는 일인데요."

"후회라... 돌을 다루는 일을 사람들은 천시여기지. 가끔 내가 생각해도 그래. 대리석 먼지를 쏜 꼴이란... 그래 제빵공처럼 하루가 끝나면 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 도무지 지저분하고 시끄럽기만 한 그곳을 우아한 화가들의 집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지... 하지만 후회한 적은 없네. 이 번일은 그런 작업 환경에서 벗어났지만 역시나 후회는 없네. 오히려 가능성을 실험할 기회니까."


브라만테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기억이 있었다.

'미켈란젤로 선생은 이 일을 해낼 만한 충분한 용기나 배포가 없습니다. 그는 아직 인물화 경험이 충분치 않습니다. 더구나 천장에 그리는 인물화는 그에 필요한 원근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땅에 발을 디디고 그리는 것과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미켈란젤로씨 당신은 모르겠지만 브라만테의 함정에 빠졌어요."

그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 미소에는 뭔가 힘이 실려 있었다. 


"브라만테는 당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시스티나 예배당을 제안한 거에요. 거부하면 교황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고, 반대로 당신이 승낙하면 경험 부족으로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말이에요."

"알고 있네. 브라만테... 그 이름 만큼이나 욕망에 '굶주린' 사람이지. 그의 장난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네..."


"전문분야도 아니고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다 채울 수 있죠? 실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명예가 달린 것 아닌가요?"


"하하하 걱정 말게...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네. 먼저는 음... 작품이 완성할 때 까지 아무도 작품을 볼 수 없다네. 이 발판이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 아래에서의 시선을 가려줄 거네. 그 말은 즉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이지. 잘못 되었으면 수정하고 고치면 된다네... 물론 고생이 따르겠지만 말이네. 하지만 어쩌겠나. 나도 한번에 해낼 꺼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게다가 지적했듯이 난 프레스코를 모른다네. 하지만 이 작업을 위해 그 동안 많은 준비를 했네. 어디서 부터 어떤 작업을 할 껀지 다 구상해 두웠다네. 이미 내 머릿속에 시스티나의 천정이 다 그려져 있네. 그것을 당장 보여 주고 싶지만 젊은이 좀 참아 주게. 아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한 이 손을 믿을 뿐이라네."


"잠깐 따라오게... 여기 좀 읽어 주겠나?"

성경책에 하얀 가루가 묻었다. 펼친 곳은 창세기 6장이었다.

"너는 고페를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 6:14~16)" 라틴어 성경이 술술 읽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라틴어 공부했군. 아주 잘했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혹시 아는가?"

"글쎄요. 저는 잘..."

"이 길로 들어 서면서 라틴어를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지. 소경이 어떻게 소경을 인도하겠는가? 그래서 독학하기 시작했지[각주:3]. 다른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지.  아마 15살 때 쯤 열정적인 그의 설교를 들었지. 그처럼 영혼을 울리는 메시지는 없었다네. 그건 그렇고... 삼백규빗이면 얼마인지 아는가? 135m이네, 폭이 22.5m 그리고 높이 13.5m가 되는 어마 어마한 크기이지. 가족의 힘만으로 그것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글쎄요...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여기 좀 다시 읽어 주겠는가?"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22)

"난 지금까지 그 믿음대로 살아왔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은 부르시고 맡기시지. 나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감대로 그려 나갈 뿐일쎄.... 그리고 이 그림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조그마한 봉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그림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개의 조르나타가 들어 갔다. 여러번의 수정 작업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가 수정을 하는지 그림을 그리는지는 밑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각주:4] 


처음 그가 그린 것은 노아의 방주였다. 만선인 작은 배에 필사적으로 승선하려는 벌거숭이 남자들과 수십 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나체로 대홍수를 피하고 있었다. 직사각형 방주는 지붕과 창문이 보이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창문 사이로는 빨간색 옷을 입고 구레나룻 수염을 늘어뜨린 노아가 보였다. 하지만 노아는 시선은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한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미켈란젤로의 모습 또한 보았다. 그 또한 항상 고독했으니까. 


어렵게 방주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구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방주 안으로 들어 갈 방법이 없었다. 사다리를 세워보고 심지어 도끼로 찍어 보지만 방주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작은 배는 위태하다. 살기 위해 배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폭력과 욕망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밀치고 끌어 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배에 올라 선 자라고 해서 평안하지는 않다.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 두려움, 난폭이 녹아있다. 


왼쪽 고지대로 질서정연하게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의에 빠진 모습이다.

벌거벗은 채로 한 웅큼의 옷가지를 그리고 프라이팬을 움켜진 두 남자를 보인다.

뒤를 이어 걸상을 거꾸로 세워 식빵과 도자기 몇 점과 칼을 담아 머리 위로 올린 여성이 따르고 있다.

차오르는 물을 피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헛된 노력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오른쪽에는 돌섬 같은 곳에 임시로 천막을 쳐서 비를 막아 보지만

멈주치 않고 계속 불어나는 물의 높이를 확인하며 절망에 빠진다.

그럼에도 기운찬 노인이 무기력하게 출 늘어진 젊은이를 두 팔로 붙잡고 돌섬으로 옮기고 있다.

같은 운명에 처할 상황에서도 손을 뻗는 인간애도 보인다.



죽음을 앞두고 보일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모습을 고스란히 천장에 담았다. 하지만 비가 보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언제쯤이죠? 비가 내리기 전인가요? 비가 멈추 후인가요? 아니면 내리는 순간인가요? 그런데 왜 바람은 보이지만. 세찬 빗방울은 보이지 않죠?"


  1. 14세기 화가로 산 기미냐노 성당 부설 콜레자타에서 [예수의 일생]을 프레스코 하다 30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목숨을 잃음. [본문으로]
  2. '스타레 프레스코'(starefresco)는 이탈리어 표현으로 '곤경에 빠지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영어 프레쉬(fresh)의 이탈리아어 프레스코(fresco)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석고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프레스코 작업은 온갖 어려움과 고초가 있음을 암시한다. [본문으로]
  3. 13세에 도메니코 길를란다요 화실에 들어 감 14세에 산 마르코 정원 학교에서 신학, 수학을 배움. 로렌초 사망 후 자신을 받아 준 알도브란디에게 매일 저녁 보카치오, 단테, 페트라르카 등의 책을 읽어 줌. 16세에 4권으로 된 [일리아드]를 라틴어로 완역을 함. [본문으로]
  4.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yson33&logNo=100152041081&categoryNo=39&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1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 참조 [본문으로]


로셀리는 인사하면서 나갔다.

"먼 거리에 피곤할 텐데... 잠시 이 집에서 머물고 있으세요. 친구들을 풀었으니 금방 집은 구할 꺼에요. 그리고 내일부터 일을 도와 주면 되요."

"로셀리 아까 말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래요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미켈란젤로씨라면 분명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을 꺼에요. 그럼 잘 자요"


문을 닫으면서 

'로셀리는 우리가 묵었던 호텔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바뀐 것이 아니라 없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지하철, 트램, 현대식 건물들... 하다 못해 핸드폰을 들고 가는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다 바뀌었다. 축제장에 온 것 같은 옷 차림들...' 

순간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밖의 풍경을 내다 보면서 아내는 물어왔다.

"아까 로셀리가 했던말 생각나요?"

"무슨말?"

"그 분이 미켈란젤로라고 했잖아요. '다비드'상을 만든..."

"정신 빠진... 아니 말은 맞지... 그러니까 다비드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지...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로 사람 혼을 빼놓고서는... 그래 가방! 잃어 버린 물건 없나 찾아봐!!! 아까 봤지 카운터에서 주인장이랑 웃으면서 말하던 것... 어떻게 우리 묵은 호텔을 알고 안내했지? 이렇게 한 방 먹은 건가?"

"글쎄... 좋은 사람 같던데..."

"당신은 그래서 문제야. 미켈란젤로라는 무슨... 건축회사 감독관이나 되나 보지. 아무튼 한번 지갑이랑 살펴보라니까! 여권 지갑 신용카드..."

지퍼를 열던 아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든 것은 그대로 있어요. 다만 요엘이의 분유가 터져버린 것을 빼면요."

"맞아 관광 가이드 책을 좀 줘봐. 로셀리 이 사람 우리를 얼간이로 알아겠다."


책을 펼쳐들고 87페이를 펴는 순간 현기증이 생겼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원래 작품은 31세의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디요(33세)가 참여해서 완성했다. 후에 루카 시뇨렐리도 합류해서 프레스코 작업을 도왔다.  벽 전체를 유리창 아래 격식과 일치하도록 6개 구역으로 나누고 한 구역에 한  명의 화가와 조수들을 배정해서 폭 6m, 높이 3.6m 크기의 그림을 완성했다. 본당 한 쪽은 모세 일대기 장면과 맞은 편은 예수의 일대기를 그렸다. 밝은 색 옷 차림을 입은 역대 교황 32명의 초상화를 그리고 천장은 큐폴라 양식에는 흔한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주제로 그렸다. 천장을 작업한 사람은 피에르마 테오 다멜리아이다.


"피에르마 테오 마멜리아... 아까 편지를 보냈다는 사람?"


계속 읽어 내려 갔다.


1508년 5월 10일 미켈란젤로는 작업을 하기로 계약을 했고, 1512년 10월 31일 완성했다. 4년 4주 만에 완성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걸작으로...


읽는 것을 멈췄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여보, 저 사람들 봐요. 지금 무슨 행사를 하나 봐요. 모두들 중세 시대 옷들을 입고 나왔어요. 작년 여행에서도 그랬잖아요. 체코에서 체스키크롬로프를 갔을 때 기억나요? 그때도 아마 6월 이었죠?"

"그런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로셀리는 열심히 제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그들의 작업을 열심히 바라보는 어제 보았던 사나이가 있었다. 어깨가 딱 벌어진 단단한 체격이었지만 몸매가 좀 이상했다. 네모진 이마에는 주름이 많고, 검은 머리는 헝클어진 고수머리였다. 조그마한 눈은 슬프게 보였다. 턱수염은 그 외로움을 감추는 듯 했다. 걸을 때 등은 굽고 배가 나왔다. 그리고 보니 가이드 책에 나온 얼굴과 비슷했다.


마르첼로 베누스티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릴 무렵의 미켈란젤로의 초상>, 1535년경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



사람들의 긴 행렬에 합류하여 계단을 내려 가고 또 내려갔다.  탄성과 웅성 거리는 소리가 문을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의 결과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질 시간이었다. 문을 통과 하기도 전에 우리의 고개는 뒤로 젖혀 졌다. 미켈란젤로가 몇 년 동안 했을 몸 짓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었다.


문을 들어 선 순간


시끄러운 작업 소리가 천장에서 울리고 있었다. 석고들의 파편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오래된 먼지들과 석고 가루들은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도 모질랐는지 이방인의 호흡 기관에도 가득 채워갔다. 민감해진 기관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연신 재채기를 했다.


"쿨럭, 쿨럭!!!"


재채기 소리에 위를 뚫어져라 바라 보던 한 사나이가 뒤로 돌아 보았다.

머리에 먼지가 가득 쓴 꼴이 제빵공처럼 보였다.

한참을 쏘아 보더니... 다무진 입술을 열었다.


"자넨가?"

한심스런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얼마전에 편지는 받았네만... 너무 말랐군! 이런 애숭이를 추천하다니...."


"어이. 로셀리! 이리 좀 내려오게... 이 친구 집 좀 구해 줘야 겠네."

"지금이요? 지금 일이 태산처럼 쌓인 것이 안 보이나요?"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 만큼이나 잘 하는 친구도 없지. 허허."


로셀리는 천장의 별 하나를 막 떨어뜨리던 참이였다.

마르텔로를 내려 놓고 한참 후에 내려왔다.


작업 모자를 벗어 온 몸에 붙은 석회 가루를 털고는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사람들은 저를 로셀리라고 부르죠..."

"전 피터에요."

"음 좋은 이름이군요. 내기 하나 할까요?"

"......"

"당신 집을 구하는 일과 저 천장 작업 중에 어떤 것이 빨리 끝날지 내기해요?"

"집이라뇨? 우린 그냥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보려고 온 것 뿐이에요?"


"피터... 알고 있네. 천장화를 보러 왔겠지." 계속해서 그는 말을 이어 갔다.

"피에르마 테오 다멜리아로 부터 편지를 받았네... 편지를 통해 천장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애시당초 붓을 들어서는 안되지. 그리고 자신의 그림 위에 어떤 그림이 덧칠해 질지 무척 궁금해 하더군. 그래서 한 사람을 보낸다고 했지. 자 보게나. 별들이 떨어지고 있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여기는 어디고? 또 그 해괴한 옷차림, 그 말투는 좀 처럼 적응이 안되는 군요. 시스티나 예배당이 아닌가요?"

"허허. 좀 충격이 큰가 보군. 나도 잘 알고 있네. 그가 반짝이는 별들을 수 놓기 위해 밝고 푸른 바탕색에 황금별을 새겨 넣었다는 것[각주:1]을... 더욱이 가장 밝고 비싼 금색과 군청색을 풍부하게 사용 했더군. 하지만 나는 별에 별로 관심이 없다네... 미안하지만 기존 프레스코는 흔적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뜯어 낼 계획이네... 비록 일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말일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셀리 말을 이어갔다.

"덧 없는 인생이여~ 우리의 발자국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겠지요?"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저요? 전 아까 로셀리라고..."
"당신 말고... 당신 말이에요. 도대체 누구죠? 그리고 여긴 어디죠?"


그때 아내가 조용히 내 옷자락을 잡아 당기면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가르켰다.

핸드폰의 날짜는 크고 선명하게 1508년 6월 13일 오후 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혹시 지금 날짜가?"

"네 기억으로는 한 달 하고도 3일 전에 이 일을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옆에서 로셀리가 말했다.

"미켈란젤로씨 7월 말까지 철수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요?"

"그래도 자네가 서둘러 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미안 하네 피터. 충격이 크겠지만 스승에게는 그대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겠지? 그리고 우리 일을 도와 주는 조건으로 자네의 합류를 허락했네. 자~ 로셀리! 빨리 아이와 숙녀 분에게 좋은 집을 구해 줘야 겠지?"

"분부대로 해야죠." 로셀리는 어깨 위에 먼지도 마져 털었다.


등뒤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 별은 걱정 말게나... 아이 방에 지금 사라져가는 별들을 그대로 옮겨 줄 것을 이름을 걸고 약속 함쎄... 내 이름은 미켈란젤로일쎄."


로셀리는 금세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하~ 내 발명품 도르레를 이렇게 아기 바구니에 달았군요. 멋진걸요!"


유모차를 자기 품으로 잡아 당기면서 앞장을 섰다.

멍하니 서 있는 우리를 향해 고개짓으로 따라 오라고 했다.

  1. 큐폴라(cupola)는 작은 건물의 돔과 같은 양식의 둥근 천장을 뜻한다. 왕관을 씌운 듯한 큰 지붕이나 돔 모양의 큐폴라는 실내에서의 전망을 좋게 하기 위해서, 또는 햇볓이 잘들고 공기의 순환을 좋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 단어는 작은 컵(라틴어 큐파)를 엎어 놓은 모양의 둥근 천장을 나타내는 저 라틴어 큐풀라(그리스어 큐펠리온에서 유래한 고전 라틴어 큐펠라)로 부터, 이탈리아어를 경유해서 들어온 단어이다. 큐폴라는 큰 건물의 부속된 작은 건물들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 건축물은 큰 지붕보다 더 높이 있어 자주 종탑, 등실, 또는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그 건축물은 탑, 첨탑, 터릿[3]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인도 건축에서 볼수 있는 챠트리가 큰 구조의 꼭대기에 사용됐다면 큐폴라로 정의한다. 큐폴라는 고대 로마 건축에서 발견된 장치인 오큘러스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비바람에도 견딜수 있는 큐폴라는 북유럽의 습윤한 기후에서 우세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력이 컸다. 참조[http://ko.wikipedia.org/wiki/%ED%81%90%ED%8F%B4%EB%9D%BC] 큐폴라 양식에는 흔한 그림 주제였다. [본문으로]


다가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그 '장소'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지도도, 직감도 필요하지 않았다. 수 많은 깃발들은 마치 고지 점령을 이끄는 기수들 같았다. 물론 깃발들은 인파로 인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전진할 뿐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로 한 일행을 이끄는 깃발을 보았다. 순간 우리는 그 깃발에 매료되어 그 일행 꽁무니를 따라 붙었다. 이미 지친 사람들을 뒤로 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다. '모세의 기적'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저지도 없이 입구쪽으로 돌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깃발을 든 기수병은

길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병사에게 거침없이 다가섰다. 

그리고 왕의 명령서를 꺼내 들었다. 저건 뭐지???


온라인으로 단체 예약[각주:1]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소속 불명의 우리 가족 이름은 있을리가 없었다.


좀 더 정보를 알았다면 그래서 온라인 예약을 알았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니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여유를 가지고 줄을 서지 않았을까?


이미 눈으로 그 길이를 확인한 우리로써는 되돌아 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순간 유모차를 무기로 들이 밀기로 결정했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이 말만을 외치면 앞으로 나아갔다.

가슴이 떠질 것 같은 우리 가족들의 만행을 여유로운 사람들이 기꺼이 눈 감아 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묵인했다기 보다는 아들의 위한 배려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가 주문해서, 바치오 폰텔리가 설계를 했고 조반니 데 돌치가 건축했다. 

1483년 8월 15일에 완성(실제 공사의 끝은 1481년으로 본다)을 했다. 


예배당은 길이가 40.23미터, 폭은 13.40미터, 그리고 높이는 20.70미터로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파괴한 '솔로몬의 성전'의 세로 높이 2배 가로 3배의 크기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신앙의 형태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왜냐하면 거장들의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 '기를란디오', '코시모 로쎌리', '씨뇨렐리', '라파엘로', '페루지노', '핀투리끼오', 그리고 '미켈란젤로' 등등 당대의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량을 그곳에서 뽐냈으리라. 


사실 완공 당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없었다. 


21년이 지난 후 1504년 지반침하로 남쪽 벽이 바깥으로 기울면서 천장이 갈라지고 말았다.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지반 이동을 억누르고 천장 벽돌과 마룻 바닥에 수십 개의 쇠막대기를 박아 넣어 더 이상의 균열을 막았다.

1504년 가을 다시 개방했지만 균열로 벽돌을 채우고 석고를 바른 탓에 천장화의 일부(북서쪽)가 비뚤 거리는 흰선을 그대로 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사건을 계기로

걸작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1. 온라인 정보(http://mv.vatican.va) 온라인 예약(http://biglietteriamusei.vatican.va/musei/tickets/do?weblang=it&do)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프린터해서 가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 [본문으로]


"이런"


어제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그 동안의 여정이 힘들었던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호텔 아침 시간도 끝날 무렵에서야 겨우 일어났다. 이미 바닥에 흘러 내린 이불을 들어 올리면서 침대 난간에 걸터 앉았다. 게으름에 대한 댓가는 어김없이 후회로 밀려왔다.


'어제 그 일정을 소화했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 좀 더 비용이 들더라도 바티칸에 숙소를 잡았어야 했는데' 


옆에는 영원한 여행의 동반자 아내와 아들이 곤히 자고 있다. 어지럽게 벗어 놓은 흰 색 운동화는 그 빛깔을 잃어 버린지 오래다. 가방은 그대로 유모차에 걸린체 밤새 힘들게 있었다. 동전과 지갑 그리고 물병이 어지럽게 테이블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깨워야 겠지? 이 여행도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때로는 단순함이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너무나 단순, 명료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할 시간 조차도 없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힘든 상황 가운데 있던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거장의 작품을 통해 뭔가 얻고자 했던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다짐, 새로운 출발.


[각주:1]


늦었지만 서둘렀다. 하지만 마음뿐 아무도, 아무것도 따라 주지 않는다. 지하철 역에서 들어 서면서 어제 이미 여러번 책과 지도로 답사를 했지만 머리가 백지장이다. 가방에서 허둥 지둥 지도를 펴들고, 익숙하지 않는 길들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다 놨다 표지판과 지도를 연신 반복한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네이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면 편했을 텐데... 그 좋은 문명의 기계들을 뒤로 하고 이 무슨 지도람. 연신 이렇게 서둘러야 했던 이유들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사실 숙소를 나오기 전부터 화가 난 있던 상태였다. 혼자서 여행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 계획, 비행기 표를 구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지도를 숙지해야 하고 방문하는 곳에 대한 지식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것들을 준비 하려면 고단한 일정에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예약한 숙소에 대한 불만이 터지기라도 하면 미안함 보다는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함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왜 이런 생 고생을 하지? 자기가 준비하지?'


"더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 나야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당신은 뭐하는 거야!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

"내가 일부러 그랬나? 피곤하니까 그렇지."

"아 그만해... 서둘러 시간 없어."
"밥은...?"

"밥은 무슨? 시간 없어..."

"얘는"

"당신이 가서 빵 싸오든지..."

"......"


유모차를 들어 줘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내는 뒤에 처져서 따라 오고 있었다. 그 적막한 상황을 무마한 것은 역시나 아들 요엘이었다. 비둘기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요엘은 빵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1. 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486/202/004/world.jpg 참조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moneyamoneya.tistory.com BlogIcon 머니야 머니야 2012.06.20 09:10 신고

    실물을 접해보진 못했지만..꼭 한번 가보구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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