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예배당] 드디어 노아의 홍수를 그리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왔다. '올려다 보는 것과 내려다 보는 것'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항상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다른 각도로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밑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밀려 왔다. 제단으로 부터 검은 손길이 뻗어 오더니 발목을 감고 돌았다. 재물로 원하고 있는 듯 했다. 겨우 난간을 붙잡고 끌려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힘주어 눈을 감아 얼굴의 모든 근육들을 눈 꼬리에 집중 시켰다.
"이보게 조심하게! 바르나 다 시에나 1 꼴이 되기 싫으면 말일세"
그 소리에 검은 손길을 사라지면서 순간 정신이 들었다.
한바탕 놀리는 야유들이 쏟아지고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모두들 고개를 젖히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옆에 있던 미켈란젤로는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깨로 물어왔다.
"완전히 거짓말이었다고."
"뭐가 말인가?"
"비계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프레스코를 했다는 말이요."
미간을 찌푸리면서 "누워서 작업을 한다고?"
"네! 서서 한다는 것은 너무 고된 노동이라 누워서 했다고 했죠!"
"얼간이들이군. 누워서 한다고? 프레스코를? 프레스코가 뭔지도 모르는 얼간이군!!! Stare Fresco!!!" 2
"그런데 누가?"
"사람들이요"
알듯 모를듯 고개를 흔들면서 작업은 계속되었다. 한참 후 다시 내 말이 생각났던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워서라~ 음 좋은 생각이군."
나 또한 누워서 작업 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넓은 천정을 다 그릴려면 오랜 시간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집에서 하루 도배만 해도 뒤목이 뻣뻣해 오는 것을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뭐 직업상 아무리 달련 되었다고 하더라도 몇 달을 아니 몇 년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워서 하려면 프레스코 기법을 다시 고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레스코는 기존의 마른 석고 위에 인토나코라고 하는 새로운 석고를 흙 칼로 반 인치 두께로 덧칠을 한다. 인토나코는 석회석과 모래로 된 부드러운 반죽으로 표면은 안료의 침투가 가능한데, 표면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방수 기능을 갖게 되면서 흡착된 안료가 콘크리트 바깥으로 새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인토나코는 바르고 한 두 시간이 지나면 외피가 형성 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되는데, 외피가 형성 되기 전에 사전에 그려진 밑 그림을 작은 못으로 고정을 시켜 놓는다. 밑 그림은 소묘 선을 따라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안으로 목탄 가루를 뿌리거나 색 가루 주머니를 '탁탁' 치면서 대략적인 선을 남기고 붓으로 윤곽을 그려 나간다. 이 기법을 스폴베로(Spolvero)라고 한다. 다른 방법은 초크 선을 따라 철필로 그어서 석고에 자국을 남기는 방법이다. 보다 신속하게 윤곽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당신도 '프레스코'를 제대로 해 본적이... 제가 알기론 당신도 처음이라고"
"그렇지! 맞아! 나도 프레스코에 얼간이지..."
붓을 내려 놓더니 손을 내 앞으로 뻗으면서 말을 했다.
"이 손을 보게나. 붓을 잡을 만한 손은 분명 아니지... 고된 작업으로 인해 군살들이 박혔다네... 하지만 이 손은 한번도 날 속인적이 없다네. 하나님은 그 손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했다네. 정직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하나님은 축복하실 걸쎄..."
"하지만 아무리 정직해도 세상은 항상 성공할 수 만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후회하나 보군?"
"그게 성공과 무슨 상관이 있죠?"
"후회가 없다면 성공이든 실패이든 무슨 상관이 있나. 후회는 두려움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지."
"그럼 이 일을 맡게 된 것에 후회하신적이 없으세요? 참으로 고되고 처음 하는 일인데요."
"후회라... 돌을 다루는 일을 사람들은 천시여기지. 가끔 내가 생각해도 그래. 대리석 먼지를 쏜 꼴이란... 그래 제빵공처럼 하루가 끝나면 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 도무지 지저분하고 시끄럽기만 한 그곳을 우아한 화가들의 집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지... 하지만 후회한 적은 없네. 이 번일은 그런 작업 환경에서 벗어났지만 역시나 후회는 없네. 오히려 가능성을 실험할 기회니까."
브라만테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기억이 있었다.
'미켈란젤로 선생은 이 일을 해낼 만한 충분한 용기나 배포가 없습니다. 그는 아직 인물화 경험이 충분치 않습니다. 더구나 천장에 그리는 인물화는 그에 필요한 원근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땅에 발을 디디고 그리는 것과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미켈란젤로씨 당신은 모르겠지만 브라만테의 함정에 빠졌어요."
그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 미소에는 뭔가 힘이 실려 있었다.
"브라만테는 당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시스티나 예배당을 제안한 거에요. 거부하면 교황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고, 반대로 당신이 승낙하면 경험 부족으로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말이에요."
"알고 있네. 브라만테... 그 이름 만큼이나 욕망에 '굶주린' 사람이지. 그의 장난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네..."
"전문분야도 아니고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다 채울 수 있죠? 실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명예가 달린 것 아닌가요?"
"하하하 걱정 말게...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네. 먼저는 음... 작품이 완성할 때 까지 아무도 작품을 볼 수 없다네. 이 발판이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 아래에서의 시선을 가려줄 거네. 그 말은 즉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이지. 잘못 되었으면 수정하고 고치면 된다네... 물론 고생이 따르겠지만 말이네. 하지만 어쩌겠나. 나도 한번에 해낼 꺼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게다가 지적했듯이 난 프레스코를 모른다네. 하지만 이 작업을 위해 그 동안 많은 준비를 했네. 어디서 부터 어떤 작업을 할 껀지 다 구상해 두웠다네. 이미 내 머릿속에 시스티나의 천정이 다 그려져 있네. 그것을 당장 보여 주고 싶지만 젊은이 좀 참아 주게. 아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한 이 손을 믿을 뿐이라네."
"잠깐 따라오게... 여기 좀 읽어 주겠나?"
성경책에 하얀 가루가 묻었다. 펼친 곳은 창세기 6장이었다.
"너는 고페를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 6:14~16)" 라틴어 성경이 술술 읽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라틴어 공부했군. 아주 잘했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혹시 아는가?"
"글쎄요. 저는 잘..."
"이 길로 들어 서면서 라틴어를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지. 소경이 어떻게 소경을 인도하겠는가? 그래서 독학하기 시작했지 3. 다른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지. 아마 15살 때 쯤 열정적인 그의 설교를 들었지. 그처럼 영혼을 울리는 메시지는 없었다네. 그건 그렇고... 삼백규빗이면 얼마인지 아는가? 135m이네, 폭이 22.5m 그리고 높이 13.5m가 되는 어마 어마한 크기이지. 가족의 힘만으로 그것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글쎄요...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여기 좀 다시 읽어 주겠는가?"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22)
"난 지금까지 그 믿음대로 살아왔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은 부르시고 맡기시지. 나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감대로 그려 나갈 뿐일쎄.... 그리고 이 그림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조그마한 봉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그림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개의 조르나타가 들어 갔다. 여러번의 수정 작업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가 수정을 하는지 그림을 그리는지는 밑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가 그린 것은 노아의 방주였다. 만선인 작은 배에 필사적으로 승선하려는 벌거숭이 남자들과 수십 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나체로 대홍수를 피하고 있었다. 직사각형 방주는 지붕과 창문이 보이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창문 사이로는 빨간색 옷을 입고 구레나룻 수염을 늘어뜨린 노아가 보였다. 하지만 노아는 시선은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한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미켈란젤로의 모습 또한 보았다. 그 또한 항상 고독했으니까.
어렵게 방주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구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방주 안으로 들어 갈 방법이 없었다. 사다리를 세워보고 심지어 도끼로 찍어 보지만 방주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작은 배는 위태하다. 살기 위해 배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폭력과 욕망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밀치고 끌어 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배에 올라 선 자라고 해서 평안하지는 않다.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 두려움, 난폭이 녹아있다.
왼쪽 고지대로 질서정연하게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의에 빠진 모습이다.
벌거벗은 채로 한 웅큼의 옷가지를 그리고 프라이팬을 움켜진 두 남자를 보인다.
뒤를 이어 걸상을 거꾸로 세워 식빵과 도자기 몇 점과 칼을 담아 머리 위로 올린 여성이 따르고 있다.
차오르는 물을 피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헛된 노력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오른쪽에는 돌섬 같은 곳에 임시로 천막을 쳐서 비를 막아 보지만
멈주치 않고 계속 불어나는 물의 높이를 확인하며 절망에 빠진다.
그럼에도 기운찬 노인이 무기력하게 출 늘어진 젊은이를 두 팔로 붙잡고 돌섬으로 옮기고 있다.
같은 운명에 처할 상황에서도 손을 뻗는 인간애도 보인다.
죽음을 앞두고 보일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모습을 고스란히 천장에 담았다. 하지만 비가 보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언제쯤이죠? 비가 내리기 전인가요? 비가 멈추 후인가요? 아니면 내리는 순간인가요? 그런데 왜 바람은 보이지만. 세찬 빗방울은 보이지 않죠?"
- 14세기 화가로 산 기미냐노 성당 부설 콜레자타에서 [예수의 일생]을 프레스코 하다 30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목숨을 잃음. [본문으로]
- '스타레 프레스코'(starefresco)는 이탈리어 표현으로 '곤경에 빠지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영어 프레쉬(fresh)의 이탈리아어 프레스코(fresco)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석고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프레스코 작업은 온갖 어려움과 고초가 있음을 암시한다. [본문으로]
- 13세에 도메니코 길를란다요 화실에 들어 감 14세에 산 마르코 정원 학교에서 신학, 수학을 배움. 로렌초 사망 후 자신을 받아 준 알도브란디에게 매일 저녁 보카치오, 단테, 페트라르카 등의 책을 읽어 줌. 16세에 4권으로 된 [일리아드]를 라틴어로 완역을 함. [본문으로]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yson33&logNo=100152041081&categoryNo=39&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1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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