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2차 대전의 슬픔을 딛고 일어 선 독일 드레스덴 

[독일 여행: 드레스덴]


1945년 2월 13일 영국군의 랭카스터 폭격기는 독일의 드레스덴을 향하게 됩니다. 과거 작센 군주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뽑는 선제후 중 하나였으며, 작센 왕국의 수도가 드레스덴이었습니다. 


"엘베의 피렌체(Florence on the Elbe)"로 불렸던 유서 깊은 이 도시는 2차 대전 당시 대규모의 폭격을 피해왔습니다. 공업 도시이지만...


군사적 시설 보다는 아름다운 자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역사적 유적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군사적 상황이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더 이상 폭격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드레스덴 공습을 제안했고, 결국 엘베의 피렌체 드레스덴을 향해 폭격기가 날아 가게 됩니다.



랭카스터 폭격기랭카스터 폭격기


베를린 남방 160Km 떨어진 드레스덴을 폭격하는 일은 1945년 2월 13일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독일군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하기 14주 앞선 시기였습니다.  


영국군 랭카스터기 2개 제파가 공급을 가했는데, 제1파는 234대로 구성되어 17분간 폭격을 실시했으며, 3시간뒤 538대로 구성된 제2파가 도착하여 번지고 있는 화재지역의 주변부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영국 폭격기는 총 2556톤의 폭탄을 투하하였는데, 폭탄의 70%가 소이탄이었다.

소이탄의 특성상 모든 방공호와 지하실까지도 540℃까지 상승하면서 순식간에 불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방식의 폭격은 불타기 쉬운 목조가옥이 많은 오래된 도시를 공격할 때의 표준무장 탑재방식이었습니다. 


영국 공습 10시간 후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고, 정오 직후 B-17 311대가 레이더 조준 폭격을 감행하여, 철도역과 조차장에 771톤의 폭탄을 투하하게됩니다. 그 결과 드레스덴의 꽃 피운 18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들이 녹아 내려야했습니다.


드레스덴 폭격드레스덴 폭격 장면



당시 드레스덴은 어떤 공습에 대해서도 무방비 상태였는데, 이미 고사포는 동부전선에 보내진 상태였고, 야간전투기 부대가 있었지만 연료 부족으로 사단사령부 허가없이 이륙이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그만큼 전쟁의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 


또 이상한 소문이 퍼졌는데... 

연합군이 승리하면 독일 수도를 드레스덴으로 옮긴다는 이야기와 처칠의 친척이 드레스덴에 산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누구도 폭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사실로 다가와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드레스덴에는 동부전선에서 피난 온 사람으로 인해 63만이던 인구가 100만을 웃도는 수준으로 팽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곧 더 많은 사상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연합군의 개발한 폭탄 이름이 '블록버스터'였는데, 요즘도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린 영화 대작을 가리켜 '블록버스터'라고 합니다.


드레스덴 폭격 장면


드레스덴 폭격 이후 모습


폭격 후 희생자는  최초 발표에서 250,000명으로 보고되었으나, 사고 후 조사에서는 135,000명으로, 후일 연합군 측 발표에서는 38,0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민간이 희생과 전쟁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J.R.R 톨킨('반지의 제왕'의 저자)은 셋째 아들이 RAF에 복무했는데 그의 편지에는 영국공군의 폭격을 비난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는 스테이크를 즐기는 사람이 도살 과정을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 민간인 폭격에 참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으며 이런 방식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인류 모두에게 나쁜 일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폐허가 된 드레스덴을 내려다보는 동상. '천사'가 아니라 '친절'을 의인화한 동상폐허가 된 드레스덴을 내려다보는 동상으로 '천사'가 아니라 '친절'을 의인화한 동상이라고 한다.


드레스덴 폭격 후 모습과 현재 모습드레스덴 폭격 후 당시의 모습과 현재 모습


현재 드레스덴의 폭격의 폐허 속에서 재건한 궁전, 성당, 박물관은 복원되어 있습니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현무암 덩어리처럼 시커먼 모습입니다. 그 이유는 불에 타서 그을린 잔존물로 복원했기 때문입이다. 


드레스덴에는 그 슬픔 만큼이나 중요한 예술 작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입니다. 그 이외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도 있습니다.


시스티나의 마돈나시스티나의 마돈나 - 라파엘로


또한 바그너와 베버의 음악을 간직하고 있는 이 유서 깊은 도시는 

2차 대전의 큰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드레스덴의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로 웅장하면서 장관을 이룹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작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높이 8m에 길이 약 100m 정도입니다.

1870년대 그려진 이 벽화는 세계 3대 도자기 브랜드로 꼽히는 마이센 자기 타일(약 25,000개)에 그라피토(sgraffito)기법으로 그려 넣은 벽화입니다. 

총 등장 인물 93명 중 33명이 왕자를 비롯한 귀족으로 드레스덴에서만 볼 수 있는 자기 벽화이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독일 드레스덴 카톨릭 궁정 교회


독일 드레스덴 카톨릭 궁정 교회 작센주 최대의 교회로 1738년~1754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독일 드레스덴 카톨릭 궁정 교회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하우스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하우스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하우스


드레스덴 광장


드레스덴 광장


츠빙거(Zwinger) 궁정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Zwinger) 궁정은 작센 폴란드 왕 아우구스트왕에 의해 1710~1732년 지어진 궁전입니다.
바로크 궁전의 걸작이라 불리는 츠빙거 궁전은 동서남북 방향 각기 다른 모양의 건축물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황당한 벌금

(2008년 개정)


1. 해변가에서 축구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 250유로 벌금

이탈리아 하면 그래도 명세기 축구의 나라인데 해변가에서는 금지네요. 그 결과 2010년 월드컵 순위 26위 예선 탈락!!!


2. 차 안에서 함부로 키스하다가는 500유로 벌금

하나 같이 모델 같은 이탈리아인들의 입술 금지령이네요. 


3. 바닷가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면 1000유로 벌금

인도의 갠지스강처럼 이탈리아의 바다는 아주 신성한 장소인듯...


4. 해변가에서 마사지를 받으면 최고 만 유로 벌금

오~ 쎄다. 만 유로면 도대체 얼마야? 1유로 1500원 환산하면 천오백만원... 뜨악... 마사지는 고급 호텔에서 안전하게...


5. 베니스: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다가는 250유로 벌금. 해수욕장에서 다이빙을 하면 1천 유로 벌금.

해변에서 조개껍질을 함부로 가져가면 1250유로 벌금

역시 상인의 기질을 발휘 조개껍질도 아마 상품화 되어 있을 듯...


6. 카프리 섬: 카프리 섬의 중앙 광장의 계단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금지 됩니다. 

소리나는 힐을 신고 다니면 50유로 벌금입니다. 수영복 차림으로 거리를 다니면 최고 1천 유로의 벌금.

여행 중에 힐은 좀 무리죠... 하지만 경치 감상 금지는 좀...


7. 비둘기에게 먹이를 함부로 주면 500유로 벌금

아들과 여행하면서 주고 다녔는데... 이탈리아의 비둘기는 살기 좋은 다른 나라로 이민가야 할 듯...



8. 해변가에서 수건으로 자리를 맡아 놓으면 1000유로 벌금

수건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9. 성매매를 할 경우 성매매 여성이나 출입하는 사람 모두 500유로 이상 벌금


10. 비아레지오에서 바닷가 벤치에 발을 올려 놓으면 500유로 벌금.

아 왜~


11. 대부분도시: 덥다고 함부로 분수대에 발을 담그거나 들어가면 최고 500유로 벌금

그래서 관광하기는 더 좋아진 것 같다는... 


12. 공원:어린이 들이 출입하는 공원에서 흡연 금지 500유로 벌금

요즘은 어디가나 흡연자를 반기지는 않죠~


13. 스케이트보드: 비아레지오 중심가에서 타면 500유로 벌금

하기사 좀 위험 할 수도 있으니...


이상 이탈리아의 황당한 벌금들이었습니다.




쉔브룬 궁전을 찾은 날은 참으로 우울한 날씨였다.

하늘은 방금이라도 빗방울을 내릴 기세였고,

차가운 바람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프라하에서 넘어 온 시간이 늦어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휙~ 돌아야만 했다.


너무도 아쉬운 여행....



쉔브룬 궁정

쉔브룬 궁전 개관시간

  • 04월 ~ 06월 -> 8:30 ~ 17:00
  • 07월 ~ 08월 -> 8:30 ~ 18:00
  • 09월 ~ 10월 -> 8:30 ~ 17:00
  • 11월 ~ 03월 -> 8:30 ~ 16:30
쉔브룬 궁전 정원
동물원 개관시간
  • 03월 ~ 03월 -> 9:00 ~ 17:30
  • 04월 ~ 09월 -> 9:00 ~ 18:30
  • 10월 ~ 10월 -> 9:00 ~ 17:30 (섬머타임종료까지)
  • 11월 ~ 01월 -> 9:00 ~ 16:30
  • 02월 ~ 02월 -> 9:00 ~ 17:00

사막의 집 개관시간
  • 10월 ~ 04월 -> 9:00 ~ 16:30
  • 05월 ~ 09월 -> 9:00 ~ 17:30

종려나무원 개관시간
  • 10월 ~ 04월 -> 9:30 ~ 16:30
  • 05월 ~ 09월 -> 9:30 ~ 17:30

마차궁 개관시간
  • 11월 02일 ~ 05월 01일 -> 10:00 ~ 16:00
  • 05월 02일 ~ 11월 01일 -> 09:00 ~ 18:00 
                                         * 개관시간 변경: 12월 24일 -> 10:00 ~ 13:00, 1월 1일 -> 13:00 ~16:00




에펠탑의 효과 

 

1889년 3월 31일 프랑스 파리에는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열린 만국박람회의 기념 조형물로 에펠탑이 세워졌다. 이 탑의 건립계획과 설계도가 발표되자 당시 파리의 문인, 화가 및 조각가들은 에펠탑의 천박한 이미지에 기겁을 했다. 1만 5천여 개의 금속 조각을 250만 개의 나사못으로 연결시킨 무게 7천 톤, 높이 320.75미터의 철골 구조물이 고풍스러운 파라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에는 철거하기로 약속하고 건설을 강행했다. 

 

탑이 세워진 후, 시인 베를렌은 "흉측한 에펠탑이 보기 싫다." 에펠탑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소설가 모파상은 몽소 공원에 세워진 자신의 동상이 에펠탑을 보지 못하게 등을 돌려 세웠다. 에펠탑 철거를 위한 '3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20년이 자난 1909년 다시 철거 논의가 거세졌지만, 탑 꼭대기에 설치된 전파 송출 장치 덕택에 살아남았다. 그러면서 철거 논의는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이 되었으며 에펠탑 없는 파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 

 

파리 시민들이 날마다 보는 에펠탑에 정이 들어가듯 단지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증가하는 현상을 '단순노출의 효과 Mere Exposure Effect'  또는 '에펠탑 효과 Eiffel Tower Effect'라고 한다.  

 

-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이민규 저. 더난 출판. 2012. p. 53,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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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프르제미슬 왕가는 9세기 말 독자적인 통합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리부셰 공주는 탁월한 리더십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리부셰는 자신의 남편으로 비천한 농부를 부족의 통치자로 세웠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그리고 400여 년의 긴 통치를 하게 된다. (성 바츨라프와 프르제미슬 오타카르 2세도 리부셰의 혈통이다.)


비세흐라드 공원에는 리부셰 공주와 남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오타카르 2세가 전하한지 얼마 되지 않은 1306년, 왕권은 프르제미슬에서 룩셈부르크가로 넘어갔고, 이 가문에서 체코 프라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카렐 4세가 나오게 된다.


프라하 어딜 가든 카렐 4세의 눈부신 업적을 확인할 수 있다.


1526년 이후 프라하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1620년 프라하 서북쪽의 빌라호라 전투에서 신교운동을 하던 체코 군대가 오스트리아 카톨릭 군대에 패함으로

체코 왕국은 독립을 빼앗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10월 28일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가 끝난다.


300여 년 만에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은 1939년 나치점령 전까지 찬란한 문화,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45년 전후 혼란시기를 거쳐 1948년 소련의 간섭하에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침체에 빠진다.

1989년 벨벳혁명으로 다시 자유국가가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한 체코는 2005년 EU멤버가 된다.



켈트족이 프라하 정착민을 보이(Boii), 보이오하에뭄(Boiohaemum), 보헤미아(Bohemia)라고 불렀다고 한다.

체코를 보헤미아라 부르는 것도 이것에 유래한다.


프라하라는 이름에는

'문지방'(prah)이나 '언덕'(little hill), '불로서 숲을 태운다'(praziti), '강물의 소용돌이'(prahy) 등의 의미가 있다. 

프라하는 940~950년대 독일 연대기 작가와 아랍여행객에 의한 무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초로 프르제미슬 통치하의 프라하에 대한 기록을 남긴 국제적인 관찰자는 야쿱이라는 박학한 유대인으로,

그에 의하면,


프라하는 러시아와 터키 상인, 모슬렘족과 유대인들이 질 좋은 상품을 구입하려 오는 곳일 뿐 아니라

음식물이 싸고 풍부하며 부유한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프라하에는 골렘 전설 등 유대인에 얽힌 전설이 많다.




골렘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Prague-golem-reproduction.jpg


환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 온갖 악역으로 등장하는 골렘이지만

프라하에서의 골렘은 약간 앙증 맞다고나 할까?


아무튼 골렘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중세의 분위기가 딱 들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새벽 미명의 안개가 낀 프라하에 골목길은

중세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진흙으로 빚어진 골렘은 원래 착한 녀석이었다.

주인인 뢰브(유대인 랍비, 1512-1609)의 말을 잘 따르던 온순한 녀석이었다.

뢰브가 골렘을 만든 목적도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겼고, 

폭력에 시달리는 유대인을 돕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너고그에 보관되어 있던 

비밀스런 서적을 연구한 끝에 뢰브는 골렘을 만들 수 있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을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각주:1]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Golem_and_Loew.jpg



뢰브는 나뭇가지를 잘라 몸체로 삼고,

넝마 조각을 둘둘 말아서 머리를 만든 후 블타바 강변의 찰흙을 바르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불타오르듯 빨갛게 변하더니 머리와 팔, 다리가 생겨났다


뢰브는 골렘에게 생명을 불어 넣고 하인 옷을 입혀서 유대인들을 돕고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처음 골렘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일했고

어둑해지면 프라하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유대인 공동 거주 지역인 게토의 경비를 맡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시간이 흘러 갈 수록 골렘은 포악해져 갔다.


뢰브는 오랜 고민 끝에... 골렘의 생명을 빼앗아 시너고그 서까래 밑 다락에 숨겼다.


그렇게 잠잠하게 잠을 자던 골렘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어린 독일 병사들에 의해서 깨어 나게 된다.

  1. 골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겔렘(물건의 재료) 혹은 갈미(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 시편 139:16)에서 유래된 것으로 봄. [본문으로]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흘러가는
프라하 시계탑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분명
전에도 거닐었던 그곳이지만...
저녁이 되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
그래서 더욱 낭만적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계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발걸음을 사로 잡는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기 위해
몇 분 전부터 바닥에 앉아 기다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맞춰서 다가오는 사람, 그냥 지나가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
아니면 전혀 관심 없이 사람까지...
어떤 자세로 나왔든 동일한 시간아래 시계탑 아래 모였다 흩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계탑을 더욱 자세히 들어다 보면 장인의 정신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이 천문 시계는

카렐대학 수학과 교수인 하누쉬(Hanus)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다.

그러나 제작이 완료되자 같은 시계가 다른 곳에 설치될 것을 우려해

제작자의 두 눈을 뽑아 버렸다.

 

1490년대에 제작한 천문시계는 천동설을 반영한 것이다.
제작한 뒤 400년이 지난 1840년에 다시 작동 되었다.
 
시계의 첨탑에는 종이 있고 황금 닭이 있다.
그 아래에 네개의 창문이 있으며 매시 정각에 창문이 열린다.
창문이 열리면 예수의 12사도가 차례로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생각처럼 12사도 보기는 쉽지 않다.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ㅎㅎ
창문 아래에는 거지와, 지팡이를 든 유태인, 모래시계를 든 해골과 거울을 든 사인상이 있다.
놀기만 하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골만 남게 된다는 교훈이...

이 시계는 달력의 기능도 있다.
달력은 화살촉이 가리키는 곳이 달인데 원판이 회전한다.
농업과 관련한 그림과 별자리가 있고
역일 순으로 365칸을 나누어 성자 이름을 새겨 놓았다.

시계의 판에 하늘색은 낮을, 베이지색은 새벽과 저녁을, 검정색은 밤을 상징한다.
작은 종은 15분 간격으로 울리고 큰 종은 정각에 창문이 열리면서 시간 수 만큼 울린다.

시계탑 위로 올라가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으니... 꼭 올라가 보자.
매 시간마다 종이 울리는 것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천문시계를 보면서 엉뚱하지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나오는 케토라는 시계 장인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전쟁터로 보낸 자신의 아들이 주검으로 돌아 오자 큰 슬픔에 잠긴다.

그 슬픔에...
기차역에 붙일 시계를 아주 특별하게 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행사 날 드디어 시계는 모습을 드러낸다.
공개된 시계를 보고 사람들은 당혹스런 표정을 진다.
왜냐하면 시간이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케토는 이렇게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이 혹시나 살아 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이후 줄거리는 영화를 통해서...




여행하면서 이렇게 넓은 광장이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 곳 이다. 한 쪽으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반대는 눈부신 태양이 광장을 품고 있었다.

이제는 여행객을 위한 장소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먹구름과 같은 불길한 소문들과 여러 정보 교환의 곳이자 공동체가 소통하는 장소이며,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개인을 위한 삶의 터전이며 탄생과 죽음을 알리는 사적인 곳이었을 것이다.

분수를 바라보며 때로는 고단한 여행객들을 목마름을 달래 주었을 광경을 생각하며 금빛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광장을 가로 질렀다.

[체코]부데요비츠카 광장에 서다.[체코]부데요비츠카 광장에 서다.



[체코]부데요비츠카 광장에 서다.[체코]부데요비츠카 광장에 서다.




무심코 걸어 다닌 그 길...

때로는 침도 뱉고... 껌도 뱉고... 담배 꽁초에 주머니 쓰레기까지 다 버렸는데도...
그 길이 깨끗한 이유는 새벽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세상을 갈라놓는 듯한 천둥 소리에도...
그 분들이 있기에 상쾌하게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노후된 장비와 허름한 복장...
조그마한 빗자루로 세상을 다 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애써 모아도 자동차 지나치는 바람에도 흩어지는 거리의 오물들...
보다 효과적인 장비가 필요하다.

이곳 체코에서는 낙엽을 치우는 것도 간단하다.
강아지 똥만을 전문적으로 치우는 오토바이도 있다.
인도를 올라와 청소하는 차도 있다. 

체코 프라하의 낙엽을 모으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아파트 놀이터의 모래사장도 한번 흩어주고 가는 여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프라하 거리에서...

2013.11.29 17:43


거리에서 펼쳐진 행위 예술(?)

아니면 단순히 돈벌이(?)

사실 돈 벌기 위해 나왔다.
신선한 복장과 메이크업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다...
옆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미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 아래 돈을 던져주면... 움직인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데 마치 로보트춤을 추듯이 움직인다.
마네킹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어찌했건 자신의 아이디어로 돈을 벌면 되지 않은가?
그냥 멍하니 구걸 하는 것 보다...
신호 대기하는 차에 다가와
마음대로 유리창을 쓰윽 닦고 돈을 갈취(?)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기심과 웃음을 자아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주머니의 동전을 꺼낼 수 있다.

프라하 거리에서

프라하 거리에서


  1. Favicon of http://fairy421.tistory.com/ BlogIcon 요내뤼 2013.11.29 18:36 신고

    우와~ 실제로 보고 싶어요 ㅋㅋ 프라하도 가보고싶고


체코 여행은 즐겁습니다.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물가 때문에 금전적 여유가 아니라 환경에서 오는 평온함입니다.


봄날의 고양이처럼 체코의 하루는 나른한 오후와 같습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커피라도 한 모금 마시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체코 카를로비바리체코 카를로비바리의 한 회랑


이곳 저곳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이 언제나 풍성한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찾아 오는 서비스 같습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조용한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체코 카를로비바리체코 카를로비바리의 길거리 공연


전혀 요란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시시하지도 않은...

체코만의 다양한 문화들이 모든 도시마다 펼쳐집니다.


한국에서 먼 거리를 날아와 볼 수 있는 것이 어지러운 상업적 광고판이 아니어서서 좋았습니다.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에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체코 카를로비바리


체코 카를로비바리



체코 카를로비바리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의 한가로운 풍경


체코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게에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장에서 오후 햇살을 맞으며 이웃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습니까?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다가 층간 소음으로 다투어야 할 때 만날 뿐 인데요.


온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산책한 적인 도대체 언제 있었을까요?

아무리 시간을 거슬러 보아도 좀 처럼 꺼낼 수가 없습니다.


체코 카를로비바리


골목길 조차도 운치가 있고 멋있는 까닭은...

그냥 외국이라서가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여유.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여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왜 한국이라고 이런 길이 없을까요?


바쁘게 산다는 것...

많은 것을 얻는 것일 수 있지만...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체코 카를로비바리


체코 카를로비바리


커다란 건축과 그러나 그것 보다 더 큰 자연의 선물이 조화를 이루어

아주 조그마한 사람이 지구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다르죠...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출임금지 푯말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광장과 이제 막 심어 혼자 서 있기도 힘든 나무들... 

그것조차도 회색 건물들에 막혀 찾을 수 없으니.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을 겁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도대체 어디 있냐고...'





체코의 카를로비바리는 국제 영화제로 유명하지만

사실 휴양지 특히나 심신을 풍유롭게 하는 온천 도시로 유명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라고 하네요.


온천수를 마시는 것이 카를로비바리 여행의 특징인데요.

온천수를 즐기기 위해서는 전용컵을 사야합니다. 

손잡이 부분이 주전자 주둥이 처럼 뚫려 있어 뜨거운 온천수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한 컵들을 들고서 맛을 음미하는 모습입니다.

컵이 없다면 여행의 반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비가 와도 온천수를 즐길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사도바 콜로나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온천수와 온천수를 이어주는 회랑입니다.

여러 온천수가 있고 물마다 치료용이 다르다고 하는데요.

맛은 어떻냐고요? 

건강해진다고 하니까 마시는 거죠.

철분이 많은 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우리는 외국사람들의 파란 눈이 신비롭듯

그들은 한국 사람의 검은 눈동자가 신비로운가 봅니다. 

어디서나 아들 녀석의 움직임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체코 프라하에도 가을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온통 붉은색으로 덮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라하의 자체 분위기로도 충분하다.

 

프라하성 옆으로 왕실 정원이 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들러 보는 코스중에 하나 이지만 혹시 지나칠지도 몰라 글을 남긴다. 

여름 그리고 가을에 정원을 돌아보면 자연이 주는 평안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프라하의 은행 나무프라하의 은행 나무 Wizztour.com


 


정원에서 은행나무를 발견했지만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아서인지 그냥 지나칠뻔 했다.

은행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무성하게 열렸다.

 

맘 같아서는

작대기로 신나게 휘두르고 열매들을 따고 싶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곳이니 조심해야지... ㅎㅎ

 

하기사 체코에서는 달려 있는 열매들을 잘 따지 않는다.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체리 따는 것 외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일종의 멋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곳곳에서 풍성하게 열매를 맺은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때론 가지가 찢어지더라도 말이다. 그 모습 그대로 놔둔다. 

그래서 운치가 더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은행나무와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찍은 사진이다. 물론 분과 초는 달랐지만...



프라하 왕실 정원 단풍프라하 왕실 정원 단풍 Wizztour.com



이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가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사진을 봐서는 저 나무가 얼마나 큰 나무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프라하 왕실 정원 단풍 Wizztour.com프라하 왕실 정원 단풍 Wizztour.com


이렇게 보면 감이 좀 잡힐까?

몇백년을 살아 온 나무들... 혼자의 팔로는 나무를 결코 감싸 안을 수 없는 두께이다.





낙엽을 밟으면서...

성 주위를 돌다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바로 프라하성 옆에 이런 길들이 있지만... 바쁘게 찍고 다니다 보면 결코 볼 수 없는 길이다.



프라하 여행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이다.

그곳에서 여유를 찾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중세의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호흡을 하며 그 길을 산책하고 있다.

프라하는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주는 곳이다.





체코 프라하의 야경은 유명하다.


그렇다고 세련되고 화려한 조명들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높고 웅장한 건물이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특별한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매력인 것 같다.


너무 낡았지만...

그래...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물들이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가로등 사이로 수줍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물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담을 이루고 성이 되어 프라하를 감싼다.


체코 프라하 시계탑체코 프라하의 시계탑 야경(Wizztour.com)


많은 여행자들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구시가의 시계탑은

오래 전이나 지금도 여전히 동일한 시간의 약속을 말한다.


시계탑을 왼쪽으로 하고 돌아서면 틴 성당이 보인다.

부부의 인연처럼 두 탑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아마도 이 자리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리라.


체코 프라하의 틴 성당 야경체코 프라하의 틴 성당 야경(Wizztour.com)


달들도 그 얼굴이 부끄러워 숨어 버리고

별들도 서럽게 울고 갈 프라하의 야경이다.


혼이 되어 늙은 아내와 함께 이곳에 다시 와서

그 동안 우리는 천생연분이었는지 틴 성당 앞에서 물어보고 싶다.



프라하의 게토에 이 묘지가 생긴 것은 중세때였는데, 게토의 유대인들은 애초에 허가된 테두리를 벗어나 묘지를 확장할 수가 없었던 터라 수백 년 동안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쓰는 식으로 약 10만 구의 시신을 여기에 묻었다. 그에 따라 비석들은 갈수록 빼곡하게 들어차서 서로 등을 기댈 지경에 이르렀고, 유대인들이 화상을 두려워하는 탓에 초상화 하나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들에는 그저 딱총나무의 검은 그림자만 드리워 있었다. 아마도 판화가들은 묘지의 기이한 풍광에 매료되었을 것이고, 이 비석의 버섯밭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어지는 황야의 관목처럼 묘사함으로써 그 음산한 분위기를 과장했으리라. 그들의 판화를 보면 이 묘지는 늙은 마녀가 입을 크게 벌려서 흉측한 이빨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상력이 더 풍부한 판화가들은 묘지에 달빛이 비친 광경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나는 그 판화들 덕분에 마녀 집회를 연상키시는 그런 분위기를 활용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거기에 유대교 랍비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상상했다. 비석들은 마치 지진이 일어나서 포석들이 삐죽삐죽 솟아오른 것처럼 이리저리 기울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랍비들이 외투로 몸을 감싸고 두건으로 머리를 가친 차림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모두가 희끗희끗한 염소수염을 길렀고 몸이 구부정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몸을 기대고 있는 비석들처럼 비스듬하게 선 채로 음모를 꾸미는 데 몰두해 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유령들이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라. 그들의 한복판에는 랍비 뢰브의 무덤이 있으니, 이 랍비는 모든 유대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진흙으로 골렘이라는 괴물을 창조했다는 바로 사람이다.


 - 프라하의 묘지, 움베르토 에코, p. 326~327



체코 프라하 환전 이것을 조심하자! 

[체코 프라하 여행 정보]


체코는 유로에 속해 있지만 아직 체코 화폐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유로도 쓸 수 있지만 환율 손해를 감안해야 합니다.
그것도 대형 매장에서나 가능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보통 코루나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체코 화폐로 환전하기 어려워 대부분 유로 가져와 다시 환전합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없는 구 화폐 혹은 다른 나라 화폐를 주기도 합니다.
실제 그 나라 돈들을 본적이 없기에 여러 단위로 섞어 주면 무지 복잡해 집니다.
나중에 속았음을 알고 가봐야 소용없습니다.
차라리 그 보다는 시티은행을 이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니면 말이라도 통하는 민박집에서 조금씩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체코 화폐의 가장 큰 단위는 오천코룬입니다.

환율 60원으로 잡고 대충 계산하면 30만원입니다.

우리나라 화폐에 비하면 통이 좀 크죠??

사진에 나와있는 화폐 이외에
200코룬 100코룬이 있습니다.
그리고 잡다한 동전들...

동전은
1, 2, 5, 10, 50(전에는 50코룬 지폐도 있었는데 사라졌어요.) 코룬이 있습니다.
처음에 동전 무지 헷갈립니다.
점원들이 거스름돈 건네 주는데 눈에 안들어 옵니다.
한참을 걸어가면서 계산해야 한다는... 쩝

체코 프라하 화폐 모양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 

[이탈리아 바티칸 여행 미켈란젤로 작품]

이탈리아 로마 여행 그 가운데 바티칸 사원은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관광 코스이다. 나라 안에 나라가 있는 특별한 곳이다.
카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그리고 교과서에서 보았던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가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 가족도 교과서에서 봤던 피에타와 천지창조를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유모차를 끌고 먼저 베드로 성당을 향했다.

엄청난 규모의 회랑과 안으로 광장이 있었지만...
성 베드로 성당

수많은 인파로 인해 오히려 그 크기가 작아 보였다.

광장을 감상하기도 전에 줄이 쌓이고 쌓였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줄이 밀리고 밀렸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단한 보안검열을 하고 있었고,

언제쯤 들어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탈리아 답지 않게 빠르게 진행 되었다. 


전문 가이드가 없었고,

우리는 책자를 들어다 보았다. 여기서 뭐를 봐야 하지?


아 그래  꼭 보아야 할 작품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피에타'가 있다.


피에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피에타'라고 부른다.
그 뜻은 이탈리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 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인 추기경이 
로마에 머물고 있던 25살의 청년 미켈란 젤로에게 의뢰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지만 미켈란젤로에게는 

오히려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익숙하다는 것은 이미 생각이 굳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기존의 많은 고딕 조각들은 부자연스런 형태였다.

죽은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 무릎 밖으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리스도가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켈란젤로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그리스도의 몸을 오히려 작게 표현했고, 

옷을 풍부하게 함으로 부자연스러움을 제거했다.


이부분 이해하기 위해

엄마가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될 것 같다.

젖먹이는 아기는 엄마의 품에 꼭 안겨서 자연스런 모습이 된다.

하지만 젖먹이가 아닌 청소년이라면 아니 더 큰 청년이라면

엄마가 안고 있기에도 벅찬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조각한다면 부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부자연스러움을 옷의 풍부한 표현으로 감싸안았다.

또한 옷은 하나님의 보호와 현실적 위협으로 부터 수호해 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옷자락은 죽은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위대한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도 많은 추측과 해설들이 오간다.

가령 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젊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표정이 죽은 사람 같지 않는 것, 마리아의 표정에 대한 여러 해설들이다.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각자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보게 만드는 것 같다. 


피에타상의 또 다른 숨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심히 살펴봐야 발견할 수 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두른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MICHEL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 BAT"(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

그 뒤로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않았다고 하는데

그 만큼 완성도가 놓아 이름을 새겼는지, 아니면 젊음의 혈기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피에타



성당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아크릴 유리로 보관되어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의 웅장함에 고개를 들고 천장만 쳐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가다 지나칠 수 있다. 


항시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 꼭 가보자. (관광지에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이유가 분명있다. 필히 그런 곳은 가보자.)

소형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지만 육안으로 봐야 한다면 솔직히 너무 멀다.

본인의 시력이 좌우 1.0인데 보기 힘들었다는...



※ 피에타의 수난(제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자비를 베푸소서!!!)


상을 이동하면서 마리아의 왼손가락 4개가 부러졌다.1736년 주세페 리오니(Giuseppe Lirioni)가 보수했다.

1972년 5월 21일 정신병환자인  라즐로 토스(Laszlo Toth)가 성당에 들어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하면서 망치로 조각을 내리쳤다. 구경꾼들이 부서진 조각의 파편들을 가져가서 일부의 파편들만을 회수할 수 있었다. 결국 마리아의 코를 포함한 많은 부분은 사라졌다.








몽골 국립공원에 갔다.
땅이 크다 보니 공원에 대한 경계도 알 수 없다.
그냥 차로 달려 들어 갈 뿐이다. 

안내원이 없다면 헷갈리다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참을 달리다 본 커다란 바위...

언제 부터 저렇게 쏟아 있었을까?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장관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보았더라면 좋아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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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돌무덤

2013.09.27 23:40



산을 오르면 어김없이 돌무덤이 있다.
보고 있노라면 이 돌들을 다 어디서 나왔을까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야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이 돌이지만... 이곳에는 그럴 만한 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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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사람들...

2013.09.27 23:39


몽골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 많이 본 얼굴들이다.
역시나 옷에 써있는 한글에 눈에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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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비하면 정말 작은 말이다.

하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 종자가 있었기에 징기스칸이 유럽을 두려움으로 몰아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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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음식들...

2013.09.27 23:38



몽골은 주로 양고기를 먹는다.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서 김치가 필수인데... 

실은 야채를 찾아 보기 힘들다.

대부분 밑반찬은 없다.

한 접시에 모든 것이 함께 어우려져 나온다.

맛은 밋밋한 것 같았다.

강한 향식료도 없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하다 보면 물을 많이 먹어야 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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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안에는 양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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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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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시내모습

2013.09.27 23:34


일상적인 시내모습이라고 할까?

몽골의 초원하고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삭막하고 가스 냄새가 진동하는 곳...

아침이면 자연의 신선한 공기가 아니라

쾌쾌한 문명의 이기적인 냄새로 가득하다.

물이 귀한 나라.

물이 없는 곳은 삭막한 사막과

사람들의 건축물 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먼지만 가득한 도시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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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는 한국 차들이 많다.
낯선 그곳에서 눈에 익은 글자를 본다는 것은 마냥 즐겁다.

때로는 그 버스를 타면 한국으로 갈 것만 같다.
벌써 폐차가 되었어야 할 차들이 이곳에서는 당당히 달린다.

말을 사랑하는 민족이라서 그럴까?
달리는 차에도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랑이 겉은 낡았어도 달리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들은 한국사람보다 더 한글을 사랑한다.
한글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민방위가 써 있는 모자도 멋지게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 대한 반감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친절한 나라에서...
왜 교만하고 불쾌감을 주는 민족으로 바꾸어 가는 것일까??

계속해서 좋은 이미지를 남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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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달린다

아무도 쫓는 이가 없고

아무도 막는 것이 없다.

다만 굶주린 배를 달래고픈

본능에 이끌려 달린다.

하지만 리더가 없기에

아무리 달려도 충분한 쉼과 공급은 없다.

그렇게 달리다 지쳐 잠이 들면 또 내일을 걱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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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념광장에서

2013.09.27 23:25


몽골의 기념탑이라고 했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표현 한 그림들이다.

만남이란 참으로 중요하다.

때로는 형제라고 생각했는데...
이해 관계에 의해서 얼마든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남을 멀리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진실한 만남이길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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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아이들

2013.09.27 23:22



몽골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식 없는 천진함 앞에 우리는 비로서 행복이 무엇인지 배운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작은 것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것에 웃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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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양모 실내화

2013.09.27 23:18


몽골 방문 기념으로 실내화를 사들었다.

100% 양모이고, 모양도 특이해서 구입하기 했다. 

요즘 같은 계절이면 국내에서도 좀 팔릴 것 같은데...
그런데 너무 비싸서... 8천원에서 만원 사이였던 것 같다.

몽골 남자들에게 있어서 신발은 중요한 아이템이다.
먼지가 많은 곳이지만 언제나 신발은 깨끗하다.
그리고 실내화도 필수품이다.

그런데 실내화의 바느질도 그렇고 좌우구분없이 만들어져있다.
하지만 겨울에는 필수 아이템...




너무도 따뜻하다...

또 미래의 아이에게도 신겨 줄려고 같이 사왔다.
그 맘도 모르고 조카는 그것을 보고
핸드폰 거치대(?)라고 하더군... 쩝 
또 실제로 핸드폰을 놔봤더니 딱 이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잘 보관했다가 아이가 생기면... 그 때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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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캠프를...

2013.09.27 23:16


몽골에 있는 야영장을 찾았다.

넓은 초원 위에 펼쳐진 게르는

자연 속에 최소한의 인공물을 드러냈다.

지나가는 동물들 조차도 반가워 할 모습이었다.

연약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 속에서 이야기 꽃이 피어 연기와 함께 하늘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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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하늘

2013.09.27 23:11


핸드폰으로 찍은 몽골의 하늘들...

손을 뻗으면 뭉게 구름도

밤하늘의 별들도

다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감히 잡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가도록...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금까지 한번도 구속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구름은 자유롭게 능선을 넘어 우리들이 알지 못 하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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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예배당] - '펜티멘티'(후회)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나님도 노아도 그리고 미켈란젤로도 말이다.  노아의 홍수를 그리면서 수 많은 수정 작업이 반복되었다. 4주 이상이나 걸렸다. 이제 시작인데 작업량은 기를란다요의 하루 평균 작업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처음 작업이라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곰팡이라는 복병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 12미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야 했다. 비계 위에 5-6명이 누워서가 아닌 직립한 채로 작업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계속되는 수정 작업에 점점 대화는 사라졌다. [노아의 홍수]에 새겨진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표정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미켈란젤로는 그런 우리의 표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천정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림이 완성하기 까지 무려 열 댓 개나 뜯어 내야만 했다. 프레스코에서 수정(펜티멘티)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덧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석고가 마르기 전이라면 긁어내면 되지만 일단 다 마르고 나면 망치와 끌을 통해 1조르나타의 석고를 통째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탐욕스런 '브라만테'의 야욕에 넘어간 것이다. 오만하고 엄청난 포부와 욕망을 가진 그의 이름은 이탈리어로 '굶주림'이었다.


어릴 적 구름 다리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팔에 손톱 만큼의 금이 가서 깁스를 했는데 석고의 빠른 응고와 한번 굳어 버린 석고의 단단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깁스한 팔은 친구들 사이에서 무적에 가까웠다.


아무튼 무려 열 댓 개나 뜯어 내야만 했다. [노아의 홍수] 장면 가운데 왼쪽 부위 반 이상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 처음부터 너무 큰 착오와 시련의 연속이었다. 자세들이 '카시나 전투'의 자세와 유사하며 '켄타우루스의 전투'와 비슷했다. 그 만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 한 쪽 바위 모서리에 무기력하게 축 늘어진 젊은이를 노인이 두 팔로 붙잡는 장면은 그런 미켈란젤로의 심정을 잘 나태내는 것 같았다. 모두들 힘든 작업이었다. 다만 위안이 된다면 [노아의 홍수] 그림 위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이라는 점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처음 부터 베네치아가 아닌 피렌체의 재료를 고집했다. [노아의 홍수]에 표현된 하늘과 물은 현미경으로 보면 가루도 된 유리파편과 공기 방울을 볼 수 있다. 스말티노라고 하는 이것은 제수아티 수도사들이 제조한 것이다. 코발트가 함유된 색유리를 빻은 것이다. 코발트는 부식성과 유독성분 비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살충제로 쓰일 정도로 독한 것이다. 아무나 제조할 수 없는 재료였다.

미켈란젤로는 안료들을 직접 빻아서 사용했는데 붓은 거의 거세당한 수퇘지의 억센 털이 였다. 그의 고집스러움이 작업을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하나 둘 고개를 젖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지켜 볼 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당시 사용한 기법은 붓에 안료를 가득 묻힌 다음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어 넣고 짜서 여분의 물기를 제거해서 칠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료를 물에 코팅한 것 같이 묽게 하고 붓에 잔뜩 묻힌 다음 반원 공간에 칠해 고곳에서 수채화 같은 투명한 효과를 냈다.

노인의 부축에 힘을 얻었는지 미켈란젤로는 반원 공간에서는 밑그림 없이 바로 그림을 그려넣었다. 조그마한 도화지가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무런 보조 기구도 없이 오로지 손으로 그렸다. 첫 번째 반원 공간은 단 3일만에 끝냈다. 인물의 키가 2미터에 이르는 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척척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1980년 복원을 통해 그 동안에 쌓인 먼지와 때를 제거하고 나서 발견한 색채가 있다. [노아의 홍수]아래 스팬드럴 중 하나에는 오렌지색 머리와 연한 핑크와 오렌지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선명한 주홍색 옷을 입은 늙은 남편 곁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500년간 양초와 오일 램프가 타면서 생긴 불포화 지방이 여러 겹 코팅하면서 변질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족보들을 그렸다. 혹 천지창조가 순서대로 그렸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방법에 따라 퍼즐을 완성하듯이 그려 나갔다. 때로는 그를 따라 가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천재의 영감을 알 수 없는 우리가 당해야하는 고충이었다.

그러나 옆에서 내가 지켜 본 결과 철저하게 미켈란젤로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어제 나눴던 이야기, 어제 보았던 인물, 어제 보았던 하늘의 색감... 그것들은 다음날 작업이 현장이 되었다. 즉 이미 미켈란젤로의 머리에는 시스티나 성당의 모든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밑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억매이지 않고 또 다른 자세와 표정이 떠오르면 곧 바로 그려 나갔다. 그리고 그런 영감은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과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족보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요시야 왕은 열왕기하 23:25절을 배경으로 한다. 창문위의 스팬드럴에 그려졌는데 아내가 아기를 안고서 앉아 있다. 남편은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인 채 몸을 쭉 펴고 있다. 가정에 사소한 입씨름을 벌린 결과 아내가 외면해 버리고 아이와 씨름하는 남편의 모습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예수님의 초상화에는 움직이는 자세의 91명의 인물이 그려졌다. 여성은 25명이다.
머리를 빗거나, 뜨개질을 감고, 옷감을 자르거나 잠에 빠져 있고, 아이를 달래거나,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다.
온화한 요셉과 행복에 겨운 성모 마리아와는 다르게 지치고 독기 서린 부부들이 몹시 거칠고 불운한 삶을 영위하는 장면으로 표현했다.

일곱 선지자의 첫 인물 스가랴도 그려 넣었다.
4미터 키에 진한 단풍색과 초록색 예복을 두르고, 그 위에 눈부시도록 파란 깃이 붙은 황토색 셔츠를 걸치고, 자줏빛 감도는 핑크색 표지의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다. 후원자 로베레 가의 문장(뒤엉킨 오크 나무) 위에 스가랴를 그렸는데 로베레 가의 상징하는 파랑과 금색 겉옷을 그린 것은 마치 스가랴를 교황과 흡사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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