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본다

바로크 양식

2014.04.01 21:59


바로코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의 바로코(Barocco)에서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는 바로크(Baroque) 예술의 특징은 외형적, 내면적 불규칙성, 그리고 모순과 긴장을 담아내는 데 있다.


바로크 예술에서는 이 세상 삶의 허망함과 저 세상 삶의 영원함이 대비되어 나타나고, 천상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속세의 물질적 삶에 대한 집착이 모순적으로 대비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아름다움과 추함, 육욕과 금욕이 이분법적으로 대비되는 모순의 불균형이 바로크 예술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도 종국적으로는 물질보다는 영혼을, 또 일시적인 삶보다는 영원한 삶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세계와 그 영광을 찬미하고 노래하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너무나도 종교적인 바로크인들의 삶의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바로크는 휴머니즘과 르네상스의 균형에 대한 반동이자 불확실한 시대의 반영으로, 또 의기양양한 카톨릭 신앙의 표현으로 남부유럽에서 발생하였으며, 중부유럽에 다시 카톨릭을 부활시키겠다는 카톨릭 정치인들과 성직자들에 의해 빌라호라 전투를 전후로 체코 땅에 들어왔다.


바로크는 고딕과 더불어 체코 문화를 형성하는 두 축이 되어 파괴되지 않고 잘 보전되어 왔다.


바로크는 정신적인 면에서 기독교를 중시으로 한 고딕시대로의 향수를 반영하고 있다.


카톨릭은 강용에 의해 되돌아왔지만, 체코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여 국민 종교가 되었고, 일부 애국적인 카톨릭 성직자들은 체코어와 체코 역사, 체코 문화를 유지하고 창달하였다. 또한 남부유럽에서 올라온 바로크 문화가 체코 문화로 자리잡으며 체코의 바로크 미술과 바로크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전성기를 맞은 체코 민속 예술과 민속 문학도 꽃을 피웠다.




  1. 2016.09.27 15:02

    비밀댓글입니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카라바조.


자유 분방한 그는 독특한 인생을 살게 된다. 여러 차례 감옥을 오가고 사람들과 자주 말 다툼을 한다.

그는 처음 부터 사회에 길들여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 속에 빚어진 갈등를 복수의 칼날이 되어 돌아 오게 되고 길거리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의 나이 겨우 39살!


하지만 그 짧은 인생 살이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감출 수 없었다. 어두운 배경 조차도 덮을 수 없는 한줄의 빛줄기 처럼 바로크의 시작을 알린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도 그의 영향을 받게 된다.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 [미술여행]



나르시스(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이다. 요정(에코라고도 함)에게 무관심한 나르시스의 태도에 화가 난 요정은 질투의 여신에게 간청하게 된다.


"나르시스로 하여금 참사랑에 눈 뜨게 해주시고, 동시에 그 사랑에서 즉시 깨어지도록 해주세요."



얼마 후...

나르시느는 목이 말라 샘을 갔다가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잡으려고 손을 뻗어 보지만 결국 잡을 수 없던 그는 결국 지쳐 샘에 빠져 죽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선화가 피게 된다.


카라바조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는 장면을 작품으로 남겼다.


검은 배경으로 인해 튀어나온 무릎은 시선을 집중시킨다.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들어갈 듯한 자세와 뭔가에 사로잡힌 표정, 입술은 약간 벌리고 있다. 힘없는 표정과 고요함은 곧 다가올 죽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미 한 손을 뻗어 물에 담갔지만 파장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얼굴을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물 속에 비친 모습은 아름답기 보다는 무척이나 우울하고 나이 들어 보인다.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생각났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39. 9. 



어쩌면 카라바조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재능에 자신 조차도 매료될 만큼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세상의 군상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나르키소스라는 작품에 담은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아도취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

하지만 카라바조의 나르시스는 그런 자아도취가 아니다.

오히려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암담함을 그리고 있다.



르네상스

2013.05.27 21:30

르네상스

 

14C – 16C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미술

고대 문화로 부터의 인간성의 부활, 자연의 재발견 작가의 개성 해방, 회화를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로의 승격한 것이 특징.

Renaissance Renacita(다시 태어나다)에서 명칭 유래 미술 사가들은 르네상스의 기원을 1401 St. 마리아 델 피오레(성모마리아의 꽃) 성당 세계당의 2번째 청동문 장식을 공식 경쟁 입찰한 때로 본다.

글렌초 기베르티(1378-1455), <천국의 문>, 1425-1452, 피렌체.

필립보 브르넬레스키(1377-1466)

 

원근법(Perspective): 일정한 시점에서 물체 및 공간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도록 평면 위에 표현하는 방법. (= 기하학적인 규칙, 화가들의 목적 표현 수단)

 

얀 반 아이크(1422-1441)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1434년 목판에 유채, 런던 국립 박물관.

인간의 상호 관계를 묘사한 최초작 과일(출산과 낙원), 강아지(충실성, 정절), 신발(신성한 결합), 촛대와 초(혼례용, 예배용, 유일신), (엄숙한 결합), 볼록 거울(화가, 증인), 서명(Johannes de eyck fuit hic)

 

도나텔로(1386(?)-1466) <St. 게오르그> 1415-1416 인간의 다양한 본질 표현에 대가, 콘트라 포스트 재발견

 

마시치오 Masaccio (1401-1428) <삼위일체> 1425-1428년경. 지오트 이후 인체를 실물과 같이 묘사

 

히에로니무스 보쉬(1450-1516년경) <천국과 지옥>, 1500-1510년경. <죽음과 수전노>, 1485-149년경.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 <비너스의 탄생>, 1484.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서풍()의 신 제피루스와 부인(꽃의 여신 클로리스)

봄의 요정(포모나 OR 호라이)

분홍장미 허리띠(사랑), 상록수 화관(영원한 사랑)

아네모네(봄의 도착)

비너스(사랑, , 웃음, 결혼의 여신)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르 프라네스카의 결혼 기념 주문작



헬레니즘 미술(B.C 32-31) -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


인간 생활이 미술의 주체로 대두하였으며, 현실 그대로 묘사하고, 극적이며, 격렬한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운동감을 주는 표현으로는 사모트라케에서 출토되어 날개, 옷 주름 등을 이용하여 움직임의 착각을 강조한 '니케 여신상', 격정의 표현으로는 '라오콘 군상',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의 부조', 다른 인종과 결합한 것으로는 '죽어가는 갈리아 인', '자살하는 갈리아 인과 그의 부인' 등의 조각이 있다. 


그리스 회화는 남아 있는 것이 없어, 당시 도자기에 그려진 회화 작품을 통해서 더듬어 볼 수 있는데 그리스 시기에는 점점 회화성을 추구하게 되고 미적 감각과 회화적인 표현 능력이 돋보인다

헬레니스즘은 서로는 로마에 유입되어 서양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동으로는 인도에까지 이르러 간다라 미술과 아쇼카 왕 치하에서의 불교 미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르네상스가 부활시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헬레니즘의 리얼리티였다


<알렉산다 대왕의 두상> B.C 325-302년경


<밀로의 비너스> B.C 200년경. h 202 cm, 루브르 박물관.


<라오콘 군상> B.C 175-50 or A.D 1세기로 추정. h 242 cm 바티칸 박물관. 

하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테네토로스, 1506년 로마에서 발견


헬레니즘의 사실주의는 주변의 일상 생활까지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시기에는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웃기고, 추하고, 격정적인 것까지 모두 표현해냈다. 

<시장가는 여인> <죽어가는 갈리아인>


로마 회화 및 모자이크

79년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묻힌 품페이와 헬라클라니움에서 발견 된 것이 주.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풍경화에 대한 관심표현 -> 공간에 대한 관심이 주


<꽃을 따는 소녀> B.C 15- A.D 60년경. h 30 cm,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로마 인근 리비아 마을의 벽화> A.D 1세기 말경


로마의 건축물과 조각

<콜로세움> A.D 80년경. h 48.77 m * 188.98 m, 1층 도리아, 2층 이오니아, 3-4층 코린트 방식

<트리아누스 기둥> A.D 106-113년. 순수한 역사 사건 서술 다시안과의 전투 승리 기념으로 제작 h 30 m.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315년 콘스탄티누스가 막젠티누스를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아치

<Forum> 가장 오래된 공공 광장으로 신전, 재판소, 상점들이 있었고, 20세기 초에 발굴되었다.

<트리야누스의 기둥> 106-113년. 다시안과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h 30 m의 로마 정복 정신 표현 기념주, 도리아식 기둥으로 총 197 m의 나선형 부조로 이야기 서술, 트리야 누스 -> st. 베드로

<마르쿠스 아우렐라우스 기마상> 170년경, 고대와 중세를 통틀어 유일한 기마상 -> 르네상스 시대의 기마상에 많은 영향을 끼침.

<판테온> 118-125, B.C 27 아그리파가 신축 -> 하드리마누스 황제가 재건축, 피렌체 대성당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내부 공간을 지님. 돔은 서샹사상 최초였으며, 최대 크기였다.



로마 모자이크 

비잔틴 모자이크 

 불투명 대리석 조각

유리 조각 

 표면이 매끄럽고 평평함

울퉁불퉁하고 빛남 

 색체 제한적

색체의 다양성 

 사실적 세부 묘사

양식화된 디자인, 추상적 배경 

 목욕, 운동경기, 전투, 풍경

종교적 내용 






에게해 미술(문화)

1. 크레타 섬 중심의 미노스 미술: B.C 2000-1500경


에게 문명은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작은 섬들과 산이 많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협지에서 발달한 해양 문화이다. 열악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이 지역인 들은 일찍부터 해상을 통한 상업활동에 눈을 돌렸다. 


미술품도 지역적 특성을 살려 상업을 위한 도자기 미술품이 발달 될 수 밖에 없었다. 미술품은 밝고 자유로우며 화려한 특색을 보여준다.  


에게 문명 중 제일 먼저 발달했던 문명은 크레타였다. 

크레타는 고대 오리엔트 지역과 가장 가까이에 있어 일찍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크레타의 벽화들은 밝고 화려하고 자유롭고 감각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현실적인 민족답게 이들의 그림은 단지 보고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의 그림은 오리엔트 미술과 같이 권위적이지 않았다.

이 크레타 섬을 유럽 최초의 문명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추상 미술의 선구적인 경향과 직선적이면서 

신체가 강렬한 힘을 지닌 기하학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1908년 이후 영국인 아서 에번스에 의해 알려지기 크레타 섬은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유럽문명의 모태가 되기도 하는 에게문명과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크레타 섬에서 꽃을 피웠고, 미노아 문명의 중심인 미노스왕의 크노소스 궁전은 기원전 17세기에 세워졌다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에 의하여 발굴이 시작 되었으며 1908년까지 발굴작업을 통하여 신화의 세계에만 있었던 크레테문명(미노아문명)....미노스(Minos)왕이 살았다는 크노소스 궁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출처: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limmok405


2.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미술


BC1450년 대지진으로 크레타의 대부분이 파괴된 후, 미케네인은 지배자가 되면서 미케네 식으로 변형시켜 갔다. 

이들이 남긴 황금 가면이나 사자 머리 황금 술잔, 칼 장식 등은 자유롭고 역동적이었던 크레타 미술과는 대조적으로 형식과 주술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3. 트로이 미술


돌고래를 그린 프레스코화<돌고래를 그린 프레스코화>, B.C 1500-1450년경, 크노소스 궁. 파란색 돌고래들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여왕의 방 주실을 장식하고 있다.


 


투우사 프레스코화<투우사 프레스코화>, B.C 1500년경



"하지만 크레타의 투우는 스페인의 투우처럼 야만적이지 않았어요. 그곳에서는 소를 죽이고 말의 배가 터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투우란 피를 흘리지 않는 경기였어요. 인간과 소가 같이 놀았죠. 투우사가 소의 뿔을 잡으면 소는 화가 나서 머리로 치받고, 그러면 투우사는 추진력을 얻어 유연하게 재주를 넘어서 소의 잔등에 떨어져요. 그런 다음에 그는 두번째로 재주를 넘어 소의 꼬리 쪽으로 떨어지고, 그러면 기다리던 젊은 아가씨가 그를 안아 줍니다."


영혼의 자서전 (하/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zantzakis) / 안정효역
출판 : 열린책들 2009.11.30
상세보기




이집트의 미술 양식



이집트 미술의 특징은 영원한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엄격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건축과 조각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특별히 영원불멸을 표현하기 위해 돌은 없어서는 안될 재료였다.


미술가는 어떤 인간의 삶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장면을 표현한다.


당시 이집트는 인간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생각했으며 사후에도 육체는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별히 왕의 시신은 미이라로 제작되었으며, 미이라의 완성도는 무척이나 높았다.


미이라와 함께 분묘건축도 발전하게 되는데 분묘는 사후 생활의 거처이자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집트의 분묘에는 많은 보물들이 함께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왕들의 영원을 상징하는 초상 조각을 만들게 된다.


이집트는 초상 조각의 기원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로마에서 초상 조각은 하나의 장식물로 자리를 잡는다.


<석회석 두상>

석회석 두상왕과 닮은 형상을 보존하도록 조각가에게 단단하고 영원 불멸을 상징하는 화강암에 왕의 두상을 조각하게 함.

<석회석 두상> BC. 2551-2528년경, 높이 27.8cm, 빈 미술사 박물관. 


<피라미드>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영혼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 한 것으로 미이라 보존과 함께 태양신 숭배를 기초로 하고 있다.

쿠프(B.C 2530)왕의 피라미드, 카프레(B.C 2500)왕의 피라미드, 멤카우레(B.C 2460)왕의 피라미드 유명하다.


<스핑크스>

스핑크스<스핑크스>, B.C 2530-2500.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뚱이에 사람의 머리를 붙인 동물로 왕권의 상징, 선한 자의 보호신 역할을 하였다. 

가장 오래되고 최대의 것은 이집트 제3왕조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에 부설되어 있고, 길이 80m에 달하여 이것이 신왕국시대에는 하르마키스 신(지평선상의 호루스)으로서 숭배되었다. 카르나크 신전 등의 참도(參道) 양측의 스핑크스는 아몬 신의 신수(神獸)인 양의 머리를 붙여 ‘두 개의 지평선(영토)’의 수호신으로 하였다. 그리스 신화의 스핑크스와는 다르다.


기원전 530년 전에 만들어진 스핑크스 석상 (그리스 아티카)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사악한 여성 괴물이었다.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독수리 날개가 있는 사자의 모습이었다. 그리스어 스핑크스(Σφίγξ)는 ‘교살자,’ 다시 말해 '목을 졸라 죽이는 자'라는 뜻이었다. 전설에 다르면 욕정 때문에 미소년을 범했던 테베 왕 라이오스를 벌하기 위해 헤라가 보낸 괴물이라고 한다. 이 스핑크스는 테베 땅을 황폐하게 하고 주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나가는 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문제를 내는데 맞추지 못하면 잡아먹었던 괴물로도 유명하다.


출처:위키백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대리석상<스핑크스의 수수께끼>대리석상.




<라호테프 왕자와 부인 노페르트> -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제 4왕조  

라호테프 왕자와 부인 노페르트<라호테프 왕자와 부인 노페르트>, B.C 2600경,석회암 채색,높이 120cm,118cm



<아크나톤왕과 부인 네페르티티 초상>

아크나톤왕과 부인 네페르티티 초상<아크나톤왕과 부인 네페르티티 초상>, 채색 석회암 2인상, 파리 루브르 박물관 - 이 작품은 엘 아마르나의 개인 주택 예배당에서 발견되었다. 아크나톤과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가 매우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공간은 느슨하게 다루어졌으며, 두 인물은 서로 손을 잡아 조용한 친밀감을 표현하였다.



네피르티티 왕비(Queen Nefertiti)<네페르티티 초상>, 석회암 흉상, 베를린 국립 박물관.-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집트 미술의 전통적인 부동성을 부드럽게 변화시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인 아톤 양식의 걸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는 윤곽뿐만 아니라 조각적인 형상 역시 더욱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어서 독특한 형태감을 보인다.



<투탕 카멘 왕> 

투탕 카멘 왕<투탕 카멘 왕>, B.C 1330년경, 카이로 미술관.



투탕카멘의 묘지 입구에 “잠자는 왕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죽음의 날개가 스치리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다. 이 왕릉의 발굴 이후 카나몬 경은 5개월 후에 모기에 물려 사망했으며, 그 후 6개월이 지나서 동생 허버트 대령마저 죽었으며,뒤이어 카나몬 경의 간호를 맡은 간호사도 사망한다. 그 이외에도 카터의 비서도 죽는 등 발굴과 관련된 총 사망자가 2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집트인들은 이를 두고 ‘파라오의 저주’라고 말하고 있단다


1922년 11월 4일 투탕카멘의 왕의 무덤을 발굴했다.

계곡 밑에선 밀폐된 무덤의 출입구로 이어지는 바위 층계를 발견한 것이다.

카터는 매장실 주위의 한 밀폐된 방에서 파라오의 미라를 발견했는데 세개의 외부 관 안에 매장된 이후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순금으로 만든 내부 관이 있었다.

사진에서 카터는 가장 안쪽 관에 부은 굳은 송진을 조심스럽게 벗겨내고 있다.

미라의 팔은 갈고리 모양의 왕홀과 회초리를 쥔 채 십자로 엇갈려있고 황금 데스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파이앙스 도자기, 유리, 홍옥수, 청금석 등으로 세공된 마스크에는 석영과 흑요석으로 만든 살아있는 듯한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이 화려한 마스크 뒷면에는 <사자의 서>의 본문이 새겨져 있다.


투탕카멘 왕묘를 발굴할 때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카터가 키우던 애완새 카나리아가 코브라에게 먹히자 발굴 인부들은 발굴작업에 불길한 징조라고 두려워 하였다.

코브라는 이집트 왕의 머리를 장식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발굴이 진행되던 1923년 카나본 경이 사망하자 투탕카멘왕의 저주를 받아 사망하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후 6년에 걸쳐 발굴작업이 계속진행되었고 이집트학에 풍부하고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투탕카멘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보물들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것은 카터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카터는 투탕카멘왕묘의 발굴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발굴작업을 하지 않았으며 1932년 영국으로 돌아갔다.영국에 돌아가서도 강연등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했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1939년 65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학문적인 연구가 끝나면 파라오는 그의 묘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는 카터의 희망대로 투탕카멘은 현재 자신의 묘에서 관광객에게 전시되고 있다.


자료 출처 : 엔조이이집트




고대 미술


1.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인류 최초의 조각품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이다.


B.C 25,000-20,000 무렵에 제작된 11.1cm의 조각상은
흔히 알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밀레의 비너스><밀레의 비너스>



밀레의 비너스와는 다르게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연한 것이 당시 인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미의 기준이 이렇고 저렇고 논할 것도 없다.


저런 기이한 형태의 여인은 인류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강조된 유방 심지어 작은 팔을 가슴 위에 올려 놓을 정도이다.

허리는 매우 굵으며, 배는 불록 나와 있어 이미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는지도 모른다.

성기가 강조되어 있으며, 얼굴은 가려져 있다. 


구석기 시대의 풍요와 다산을 주술하고 염원하는 마음에서의 소산물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각주:1]



1908년 고고학자 Josef Szombathy에 의해 발견된 이 조각품은
발견된 오스트리아의 지명으로 그대로 사용하여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명명한다.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어란상 석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석간주로 칠해졌다.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알타미라 동굴 벽화>

그렇다면 인류의 동굴벽화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이다.

동굴벽화는 중동에서 서유럽으로 이동한 크로마뇽인 후손들에 의해
20,00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목적은 제례와 주술적인 기능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은 바티칸의 <시스틴 대성당>과 비교되어지는 걸작으로 
B.C 15,000-12,000년경 제작되었다. 길이 약 270m의 불규칙한 동굴에 그려져 있다.
1879년 사우투올라(M. de Sautuola, 1831~1888)가 발견하였으나 학계의 승인을 못받았고, 
1902년 칼타이야크와 브르이유의 조사로 구석기시대 후기의 것임이 인정되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알타미라 동굴 벽화>- 스페인 북부 칸다브리아 산맥 북쪽 경사면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동굴 회화. 1879년 스페인의 귀족 마르셀리노 데 사우투올라가 처음 발견했다. 적색과 흑색을 사용해서 들소와 멧돼지, 말, 사슴 등의 동물 그림을 벽면에 묘사해놓았다. 그리고 점묘법과 농담(濃淡)에 의한 음영법 등 고도의 수법을 동원해 벽화를 그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제4기 예술의 시스틴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알타미라 동굴은 1879년에 사냥꾼에게 발견되었다. 동굴 안에는 구석기 시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보존 상태가 너무 훌륭해서 수십 년 동안 가짜로 의심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연구 끝에 이 그림들이 거의 1만 5,000년 전에 그려진 것임이 밝혀졌다. 후기 홍적세 동안 스페인 북부 지방에 살던 마그달레니안기 석기 시대 사람들의 작품인 이 동굴 벽화는 당시에 살던 동물을 그리고 있다. 주로 들소가 그려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말, 사슴과 멧돼지도 등장한다. 붉은색, 노란색과 갈색의 색채는 검은색 망간이 함유된 흙과 목탄으로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알타미라의 예술가들은 동굴 벽의 특성을 살려서 독특한 삼차원 효과를 연출했다. 270미터에 달하는 동굴은 10개의 방과 갤러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에서 조각 70여 개와 그림 100여 개가 발견되었다. 이 진기한 예술 작품 중에서 최고 걸작은 '회화의 방'에 있는데 이곳에는 15마리의 거대한 들소가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1985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된 알타미라를 본 후안 미로는 큰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동굴 벽화가 그려진 이후로 회화는 계속 퇴보했을 뿐이다."


출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
국내도서
저자 : 마이클 브라이트(michael bright) / 이경아역
출판 : 마로니에북스 2008.01.20
상세보기


3. <라스코 동굴 벽화>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함께 유명한 <라스코 동굴 벽화>가 있다.

B.C 15,000-10,0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은 1940년경 프랑스에서 발견되었다.


라스코 동굴 벽화<라스코 동굴 벽화>



4인의 모험자들


1940년 9월 12일,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 베르제 강변에 있는 몽티냐크라는 평범한 도시에 역사에 남을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도시에 사는 네 명의 젊은이들이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 탐사에 나섰다가 그곳에서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발견했던 것이다.


네 명의 젊은이들은 한 노파에게 들었던, 라스코 성으로 이어져 있다는 숨어 있는 통로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그들은 도시 가까이에 있는 동굴이 바로 그 통로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삽을 가지고 탐사를 떠났다. 좁은 입구를 삽으로 파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기대했던 것처럼, 깊숙한 곳으로 계속 이어지는 터널을 발견했다.


허리를 숙이고 좁은 터널을 지나 계속 나가는데, 갑자기 한쪽 벽면에 바로 조금 전에 그린 듯한 선명한 색채의 벽화가 나타났다. 우윳빛이 감도는 동굴 벽면에 그려진 동물 그림은 한눈에 봐도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이 대발견을 즉시 당국에 알렸고, 닷새 후에는 동굴 벽화 전문가인 앙리 브르이유 신부가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즉시 동굴 안 벽화들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이 벽화가 이제까지 발견된 벽화 가운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역사상 최대의 발견이라는 것이었다.


19세기 고고학에서는 석기 시대 인류에게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라스코 벽화의 발견으로 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비슷한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라스코 동굴은 크게 나눠 주 동굴과 주변 동굴, 주 동굴 우측으로 나 있는 작은 동굴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1)와 함께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이 동굴 벽화의 수는 100여 점 이상으로, 그 중 문양을 제외한 소나 말 등을 주제로 그린 동물 그림은 모두 67종에 이른다.


주 동굴은 길이 15미터 정도의 광장이 있다. 주 동굴의 막다른 벽면에는 여섯 마리의 커다란 소가 묘사되어 있다. 그 크기는 4.8미터에서 5.5미터 정도로 대단히 크다.


좁은 통로로 이어지는 주변 동굴에는 말과 거꾸로 그려진 말 등이 그려져 있다.


주 동굴 광장 우측으로 나 있는 작은 동굴에는 문양 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구석 쪽에는 덩굴풀, 사슴, 산양 무리, 소 등이 여러 가지 기호와 함께 묘사되어 있다.


라스코 벽화를 연구한 덴마크의 고고학자에 따르면, 이 벽화를 그린 인물은 최소한 여섯 명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가장 최근에 그려진 것도 몇천 년에 걸쳐 다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1945년부터 1963년까지 라스코 벽화는 일반에게 공개되었지만, 벽화에 곰팡이가 생기는 등 보존에 문제가 많아 현재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출처:http://terms.naver.com/entry.nhn?cid=804&docId=1532643&categoryId=804



  1. http://ecli.egloos.com/4522542 참조 [본문으로]


르네상스 미술(Renaissance Art) 작품들

 "르네상스"란 프랑스어로 '재생', '부흥', '다시 태어나다'라는 뜻으로 본격적인 회화 양식들이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시     기: 15~16세기

내     용: 고전주의의 재부활. 인본주의, 자연의 재발견, 개인의 창조성을 중요시 함.

특     징: 수학적 원칙으로 조화의 미를 완벽하게 표현.

대표화가: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만테냐 (Andrea Mantegna),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반 아이크 형제 (Hubert & Jan van Eyck), 보슈 (Hieronymus Bosch), 브뤠겔 (Pieter Bruegel), 크라나흐 (Lucas Cranach), 홀바인 (Hans Holbein)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은 그 시대의 대표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드디어 작가들은 인간에 눈을 뜨는 시기이며, 해부학을 통해 인체균형론이 발달하게 됩니다.

즉 인간을 찬미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으며,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당시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음의 말을 남겼습니다.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눈이다. 눈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은 실제 척도에 따라 검증해야 한다."

 

다빈치는 실제로 죽은 임산부의 자궁을 해부해 7개월 가량의 태아를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실제 죽은 임산부의 자궁을 해부해, 7개월 가량의 태아를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기도 했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또는 인체비례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소묘 작품이다. 고대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쓴 ‘건축 10서(De architectura)' 3장 신전 건축 편에서 ‘인체의 건축에 적용되는 비례의 규칙을 신전 건축에 사용해야 한다’고 쓴 대목을 읽고 그렸다고 전해진다. 원문을 옮기면서 고대의 인체 비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로 사람을 데려다 눈금자를 들이대면서 측정한 결과를 글로 적어두었다.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 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붙는다… 정사각형으로도 된다. 사람 키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잰 길이는 두 팔을 가로 벌린 너비와 같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람의 손가락과 손바닥, 발바닥과 머리, 귀와 코의 크기 등을 숫자로 계산하면서 사람 몸을 기하학적 관점에서 수학적으로 계량화하는 고대 사상을 실험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비트루비우스의 설명을 그림으로 옮기면서 고대의 인체비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을 데려다 실측하여 기록하였다.

한번쯤 보았을 인체비례도입니다.


이렇게 해부하고 완전한 인간상을 만들려다 보니

당연히 인간을 찬미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게 됩니다.

보다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표현을 위해 원근법이 개발됩니다.


그 전에 예술의 대상이 신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거죠.

종교에 막혔던 벽들이 허물어지는 시기입니다. 

즉 모든 것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

1. 지옷토[Giotto; 1266-1336]

2. 레오나르드.다.빈치[Leonard.da.Vinci; 1452-1519]

3.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

4. 마사치오[Massaccio; 1401-1428]

5.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562-1629]
6. 티치아노[Tiziano; 1476-1576]

7.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세기 피렌체 화가들이 추구했던 사실주의를  완성하고 

다시 16세기 이탈리아 회화 에 나타나는 고전양식을 정초 시켰으며  

자연과학, 기계공학, 토목술에서 부터  군사 용병술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활동을 보여준 

르네상스의 천재이다. <레오나르도>의 예술에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과 자연.

예술세계와 과학세계 간에 나타나는 대립을 해소 시키고 조화를 구하는데 있었다.


라파엘로는  당대 화가들의 성과를 충분히 흡수하고  특히 <레오나르드>에 의해서 정초된 르네상스의

이상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 시키고 구체화 시킨 화가이다. 즉 르네상스의 여러가지 성과는 르네

상스 회화의 3대 거장 <레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 젤로> <라파엘로> 에 의해서 종합되고 완성된다.

 

<르네상스 시대 3 대 거장>

1.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da.Vinci; 1452-1519]

2.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

3. 미켈란 젤로[Michelangelo; 1562-1629]



  1. 2013.11.11 18:09

    비밀댓글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생애와 작품


1475. 3.6. 카프레세에서 미켈란젤로 태어나다. 로도비코 디 리오나르도 디 부오나로티 시모니(1444년생)와 프란체스카 디 네리 디 미니아토 델 셀라(1446년생)의 둘째 아들이다.


1475. 3.8. 카프레세의 산조반니 성당에서 세례를 받다.


1481. 12. 모친 사망, 같은 해 여섯째 아들인 마테오가 태어남. 


1482. 미켈란젤로 프란체스코 다 우르비노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


1488. 4.1. 부친과 다비데 기를란다요 사이에 3년간 미켈란젤로 수업 계약 체결.


1489. 기를란다요 도제 공장을 나와 베르톨도 디 조반니가 교장으로 있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미술학교에 입학.


1490.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들음. 가족과 함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사저에서 생활함. [계단의 성모] 제작

메디치 궁전 조각공원

 

미켈란젤로의 <계단의 성모>, 1492년경, 대리석 릴리프, 55.9-40cm. 미켈란젤로의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계단의 성모>는 1492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일명 ‘밀어 넣은 릴리프 squashed relief’로 불리는 이 작품은 그가 열여섯 살 혹은 그 이전에 제작했을 것으로 본다. 그의 천부적 재능을 유감 없이 발휘함. 마치 돌판에 그림을 새긴 듯한, 두께가 얇고 회화적 원근법으로 표현된 이 작품은 실험적이지만, 완숙미를 보여주고 있다. 55.9cm의 대리석에 성모를 가득 차게 구성했으며, 이런 점은 그의 조각에서 특허와도 같은 요소가 된다. 성모는 정방형 토대 위에 앉아 있고, 우미한 옷자락이 주름진 채 아름답게 돌 위로 흘러내린다. 성모의 옆모습은 가장 이상화된 고전적인 모습으로 둥근 후광 안에 있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천의 주름이 코의 선과 평행을 이뤄 후강을 좀 더 강조해준다. 주름진 옷은 작은 폭포처럼 어께를 시작으로 팔을 감아 내려가 다리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 가장자리 프레임에 살짝 닿는다. 계단 위의 아이들은 관람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보이게 함으로써 원근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약간 떨군 아기의 도톰한 손이 옷 주름 위에 올려 있다. 성모의 오른발이 왼쪽 다리 안으로 비스듬히 빠져나와 미켈란젤로가 의도적으로 구성했음을 알게 해준다.


 

1491.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의 시체실에서 프라 니콜라이오 디 조반니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해부학을 공부.


1492. 4.9.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 미켈란젤로 그의 저택을 떠나 부친의 집으로 돌아감.

 

미켈란젤로의 <십자가 처형>, 1492-93년경, 나무에 채색, 135-135cm. 피렌체의 카사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의 부원장 조반니 비키엘리니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수세기 동안 사라졌다가 1962년에 발견됨.


 

1494. 1. 피에로 2세의 부름으로 시장관저로 돌아감. 10월 중순 프랑스군과 메디치 가에 대한 피렌체의 고조되는 반감을 피해 볼로냐를 거쳐 베네치아, 그리고 다시 볼로냐로 도망감. 그는 알도브란디의 의뢰를 받아 [성 페트로니우스], [성 프로쿨루스], [빛을 나르는 천사]등을 제작함.


1495. 잠시 피렌체로 귀향함.


1496. 6.25. 로마에서 생활함.


1497. [큐피드], [바쿠스] 대리석 제작. 7.9. 계모 루크레이치아의 장례식 참석.

미켈란젤로의 <바쿠스>, 1496-97, 대리석, 높이 184cm. 받침대를 포함하면 203cm.

 


1498. 8.27. 산디오니시오 추기경과 [피에타] 제작 계약 체결.


1499. [피에타] 완성.


1501. 피렌체로 귀환. [다비드] 제작 착수.


1504. 4. [다비드] 완성. 피렌체 정부로부터 벽화 [카시나의 전투] 제작 의뢰 받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1501-04, 대리석, 높이 410cm.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를 위한 스케치

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 1504년경, 대리석, 지름 117.5cm.

1505. 3.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로마로 소환됨. 묘비 건립을 위한 조각가로 위촉됨.


1506. 묘비 조각 계획을 포기함. 4.17. 로마를 떠남.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요구함.


1506. 12. 율리우스 청동상 제작에 착수.


1508. 2. [율리우스 2세 청동상] 제작완성. 3월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위해 로마로 소환됨. 5월 벽화 제작에 착수.


1510. 4. 형 리오나르도 죽음. 9월과 12월 피렌체를 거쳐 교황이 있는 볼로냐로 여행함.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위한 습작>, 1510년경, 19.3-25.9cm.


1511. 1. 로마 도착 그해 12월 [율리우스 2세 청동상] 파괴됨.

 

미켈란젤로의 <아담에 대한 습작>, 1511, 25.3-19.9cm

 


1512. 10. 시스티나 성당의 궁중 천장이 메디치 일가의 귀환 직후 완성됨.


1513. 2. 교황 율리우스 2세 죽음. 레오 10세가 계승.


1514. [십자가 예수] 착수되었다가 파기됨.


1516.3 7. 율리우스 2세 유족들과 그의 묘비 건립을 위한 계획이 계약됨.


1517. 미켈란젤로는 카라라와 피에트라산타에서 대리석을 채취하기 시작함.


1518. 1. 산로렌초 정면 장식을 에로 10세와 계약함. 율리우스 2세 유족들과 대리석 채석을 둘러싼 분쟁으로 고통을 받음.


1519. 레오나르도 다 빈치 죽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 연대미상, 33.3-21.3cm.

 


1520. 라파엘로 죽음. 교황 레오 10세, 산로렌초 계약 파기 선언.


1522. 율리우스 2세 유족들이 묘비 제작을 대가로 받은 사례비 반환 요구함.


1527. 4.26. 메디치가에 대한 민중봉기 일어남. [다비드]상이 투석으로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 세 조각으로 깨짐. 몇 주일 뒤 메디치가 추방담함.


1528. 7. 동생 부오나로토가 페스트로 사망함.


1529. 1.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 7.28. 요새시찰을 위해 페라라 방문. 9월 수비대장 말라테스타 발리오니가 적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고 피렌체 정부에 경고하지만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페라라를 거쳐 베네치아로 감. 3개월 후 다시 피렌체로 귀환.


1530. 비밀리에 메디치 묘비 작업 착수. 8월 12일 발리오니가 피렌체를 배신하고 메디치 일가는 귀환을 함.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자신의 생명을 보장할 때까지 친구 집에 은거함.


1531. [줄리아노] 작업 시작함. 3년 뒤 완성.


1534. 부친 로도비코가 세티냐노에서 사망함. 9월 피렌체를 영원히 떠남. 10월 파울루스 3세 교황 즉위.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 제작을 요청 받음.


1535. 9. 바티칸 교황청의 수석 건축가, 조각가, 화가로 임명됨.


1536. 비토리아 콜로나를 처음으로 만남.


1541. 12. [최후의 심판] 제작 완성됨.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536-41, 프레스코, 시스티나 예배당

 

 

1545.  7. [사울의 회심] 완성.

미켈란젤로의 <사울의 회심>, 1542-45, 625-660cm.


 

1547. 1. 성 베드로 성당의 건설 책임자로 임명. 2월 비토리아 콜로나 사망.


1548. 1. 동생 조반시모네 사망.


1550. [피에타] 제작.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 1546-50, 625-660cm.


 

1553. 7.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아스카니오 콘디비의 [미켈란젤로의 생애]가 출간됨.


1555.. 11. 동생 지오몬도 사망.


1557. 중병을 앓음.


1559. 피렌체의 성 요한 성당 설계 위촉받음.


1563. 피렌체 아카데미 예술원 명예 원장으로 임명됨(88세).


1564년 2월 14일 뇌졸중으로 중태에 빠짐. 그리고 18일 오후 5시 89세의 일기로 사망함. 추기경 살비아티가 임종식을 거행했으며, 친구 몇 명이 임종을 지켰다. 숨을 거두기 전 살비아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충분히 행하지 못한 점과 내 직업에서 알파벳을 겨우 배우기 시작할 때 죽게 되어 유감입니다."

 

조르조 바사리 외 그의 그룹의 <미켈란젤로의 무덤>, 1564-75, 대리석, 산타 크로체.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영문으로 뭔가를  표기를 해야 할 경우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 당신은 이름은 필수다.

항상 여권 이름과 동일하게 기입해야 한다. 


그렇담 나는 올바른 영문 이름을 쓰고 있는가?

여러번 바뀌면서 혹시 틀릴 수도 있는 영문 이름

처음 여권을 신청하고 변경할 때 돈이 드니 처음부터 잘 만들어야 겠다.


그렇다면 어떡하면 되나?

로마 표기법을 찾아 떡하니 출력하려니...

왠지 잉크와 돈이 아깝다. 단어장도 아니고...

그렇다면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변환기를 사용하면 쉽게 작업할 수 있다.

NAVER Lab언어변환기 한글 이름 로마자 표기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lab.naver.com/translation/?where=name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쇼핑이 아닐까?

그 나라에서만 생산되는 상품이라면 꼭 구입해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것을 살려고 다시 갈 수 있는 여유들이 없지 않은가?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여행에서 물건 모으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란다.

큰 물건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냉장고에 붙이는 것이라도 그 나라를 갔다 왔음을 기념할 물건들을 꼭 구입하자.

 

체코 프라하 시장 상점
체코 프라하 시장 상점 by wizztour.com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하지만 구입하거나 선물을 하려고 해도

나라마다 사이즈 표시가 다르다.

이것 참 난감해 지는 순간이다.

서툰 영어로 숫자를 나열해 보지만... 서로 민망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국가별 사이즈 조견표이다.

 

* 남성 Sweater, Shirts, Jacket 사이즈

 한국 

 -

 90-95

95-100

100-105

 105-110

110- 

 미국

 XS

XL 

XXL 

 유럽

 

 

 

 

 

 

 

* 남성 Pants, Underwear 사이즈

한국 

 28/30

 30/32

 33/34

 34/36

 36/38

 38/40

미국

 XS

 S

 M

 L

 XL

 XXL

 

* 남성신발

한국 

 250

 255

 260

 265

 270

 275

 280

 285

 290

 295

 300

 305

 310

미국

 7

 71/2

 8

81/2 

9

91/2 

10 

101/2 

11 

111/2 

12 

121/2 

13 

영국

 61/2

7

71/2

 8

81/2 

91/2 

10 

101/2 

11 

111/2

12 

121/2 

유럽

 40

401/2 

41 

42 

421/2 

43 

441/2 

45 

451/2 

46 

461/2 

47 

471/2 

일본

 255

260 

265 

270 

275 

280 

285 

290 

295 

300 

305 

310 

315 

 

 


건축 양식의 흐름

2012.10.11 16:48

고대 

이집트 BC 3100


이집트 피라미드는 당시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태양신(Ra)은 부활신이자 생명의 신(ka)로 부터 영혼을 받고 죽으면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라 보존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 왕(파라오)은 신이었으며 무덤은 신전이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즉 피라미드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계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피라미드는 석회암에 외피는 포장돌로 마감하였고, 그것을 짓기 위해 연간 십만명이 동원되었다.

약 48층 높이지만 삼각형의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피라미드가 있는 곳은 가자(Giza)지구는 나일강의 서쪽으로 해가지는 곳이다.


"석양 = 황혼 = 죽음" 이란 공식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고개가 절로 끄덕일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피라미드는

왕의 위엄과 영혼의 안식처임과 동시에

죽어서도 백성을 인도하는 신이 될 수 있다.

즉 사막에서의 등대라고 할까?

 

이미 모래바람에 훼손이 많이 되었지만

그나마 피라미드의 삼각형 구도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극복할 수 있었고

사막에 우뚝 선 삼각형의 피라미드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건축물 가운데 

가장 웅장함과 견고 그리고 불변을 상징하기에 좋은 모형이다.


그리스 BC 1600~1500

이집트에서의 신은 인간과 전혀 다른 절대적인 모습이라면

그리스에서는 신과 인간은 별로 다르지 않다.

이집트와 다르게 험난한 산악지대가 많으며, 그에 따라 많은 신들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건축물에도 다양한 신 만큼이나 여러 표현이 등장하는데

신 조차도 사람들과 같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눈다.


남성적인 신전은 도릭 양식으로

여성적인 신전은 이오닉 양식으로

소녀적인 신전은 코린트 양식으로 표현한다.


그리스식 건축의 특징은 기둥의 풍섬함에 있으며

제단과 같은 단이 있고 기둥을 세우고 그 위헤 삼각지붕을 입혔다.


즉 피라미드 형식의 존재하나 지면에서 올라갔다.


로마 BC 500

로마 시대에 이르러 신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건축물은 신보다는 조직의 질서 혹은 개인의 업적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스 미술은 신화와 인간에 초점이라면 로마는 신을 빼고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건축양식은 당시의 사상과 환경을 반영하는데

로마 군인처럼 정면이 중요했고, 정복한 땅처럼 모든 건축물에 사각형으로 구획을 나누었다.


이집트는 정적이었고 그리스는 순응이라면 로마는 정복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부터 더 크고 화려한 아치형의 건축물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면 외에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내부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각 지역과 시대마다 건축양식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문화와 사상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재료도 중요하다.

피라미드는 사암으로 세월이 지나면 오히려 모래와 개체간 결합이 강해져 사막에 세우기 좋았다.

그리스는 풍부한 대리석을 바탕으로 정교하고 섬세한 가공이 가능했다.

로마는 그들이 정복한 것 만큼이나 화산재로 시멘트처럼 벽돌을 구울 수 있어 원하는 것을 지을 수 있었다.



중세

비잔틴 313

"313년"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그 전의 모든 것들을 기독교화 했다.

초기에 예수상을 만들 시도 조차 없었는데 그리스의 여러 신상(제우스)의 이미지를 도용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 + 신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한계점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콧수염과 턱수염, 이마는 당시 여러 신상에서 볼 수 있었던 이미지 였다.

그것을 그대로 차용해서 기독교식 미로 전환했다.



로마네스크 800

고딕 1200

르네상스 1400


모던

자연주의 현실주의 1880~1900

사진현실주의 1960


Da Da or Da Daism

Anti Art 1914~1918

Neo Da Da 1950~1960


Arts and Crafts Movement 19세기 중반


Art Nouvean 1890~1905


Avantgarde 19세기 말~20세기 초


입체파 or 큐비즘 20세기 초


미래파 1915

디스틸 1917



여행하다 보면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합니다.

"이 건물은 무슨 무슨 양식이며..."


안 그래도 한식이 그리운데 양식이라니...

귀에도 하나도 안 들어 온다면 여행 기본 정보가 부족한 탓이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본다.'


그렇다면 오늘은 '고딕' 양식에 대해 배워 보자.

고딕 양식은 유럽 대부분의 성당 양식으로 

웅장한 기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이다.

그래서 '고딕' 양식 하면 웅장하고 고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고딕이란 말은 좋은 의미라기 보다는 조롱하기 위한 용어이다.

처음 그 말을 사용한 사람은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바사리였다.


그는 이탈리아 제외하고 널리 유행하고 있는 건축 양식(고딕)을 이렇게 평했다.

"그것은 북방의 야만인 고트족의 양식이다. 

장난기가 있고 요란스러우며 추악하기 그지없다.

진정 건축미는 한결 명쾌하고 조화를 이룬 형태 속에 있다."


즉 고딕(Gothic)이란 '고트족풍'이라는 뜻으로 야만인 고트족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고트족이란 어떤 민족인가?

기원후 4~5세기 쇠퇴하는 로마제국의 틈을 노려 영토를 침범한 게르만계 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로마를 침범하기 전에는 오늘날 루마니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서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고트족은 서쪽과 동쪽으로 나뉘어 독자적인 발전 과정을 거치기에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으로 나뉜다.


로마 제국 말기 민족 대이동


고트족은 4세기 훈족에게 밀려 로마 영내로 이주하게 된다.

이 때 동고트는 370년경 멸망하게 되고 서고트족은 도나우강을 건너 발칸반도와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까지 이주한다.


이미 과거의 명성을 잃어 버린 로마는 고트족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로마 영내 정착을 허용 한다.

그러나 고트족은 정착에 만족하지 않고 410년 족장 알라이크(Alaric, 알라릭)는 로마를 점령하고 약탈 한다.

이후 에스파니아(스페인)를 중심으로 독립국가를 세워 서고트 왕국을 만든다.

5세기에는 이미 멸망했던 것으로 보았던 동고트족이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와 왕국을 세운다.

말 그대로 로마는 '밥'이었다.


하지만 서고트족은 507년 프랑크인의 족장 클로비스에게 패하고, 

동고트족은 522년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멸망 당한다.

이베리아 반도와 에스파니아 방면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것도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침공한 이슬람교 세력에 의해 흔적을 감춘다.



1. 말 못하는 영어는 가짜 영어다

말못하는 영어는 가짜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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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문단열
출판 : 중앙M&B 200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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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된다 된다 영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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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백선엽
출판 : 잉크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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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센스 영어

센스 영어 Sense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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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황매 200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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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성호
출판 : 뉴런 200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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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말 많은 녀석이 영어도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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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국어/외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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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소담 200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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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의 영어공부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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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국어/외국어/사전
저자 : 김민식,이정란,양경화,권현주,강윤지
출판 : 부키 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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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어 귀혀입 동시훈련법

영어(귀.혀.입) 동시 훈련법
국내도서>국어/외국어/사전
저자 : HIROSHI MATSUZAKI
출판 : 시사에듀케이션(시사중국어사) 200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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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말로 영어하기

HUGH의 한국말로 영어하기
국내도서>국어/외국어/사전
저자 : 박웅걸(Hugh Park)
출판 : 이비톡 200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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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어공주 제대로 하자

영어 공부 제대로 하자 (개정판)
국내도서>국어/외국어/사전
저자 : 이정훈
출판 : 명상 200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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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터넷기사정화 2012.10.04 22:41 신고

    포스팅 잘 봤습니다! 최근 인터넷언론사들 도가 지나치고 있습니다.
    성폭행관련 기사인데.. 버젓이 성인광고배너가..
    인터넷에 보니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모인 모임이 있더라구요.
    페이스북 페이지인데 서명운동도하고 여튼 한번 관심같이신분들은 가셔서
    함께 서명이라도 해봐요!!
    http://me2.do/FhmM1gK

  2. Favicon of https://wizztour.com BlogIcon wizztour PRAHA 2012.11.01 23:10 신고

    찾을 수가 없다고 나와요... 링크가 잘못되었나요 봐요.


아무리 표를 봐도

A컵, B컵, C컵이라는 표시는 없다.

도대체 여자들이 말하는 44사이즈는 뭐고 55사이즈는 뭔가?

도통 여자 사이즈는 직잠할 수가 없다.



 

외국에서 여자 친구 선물을 준비할 때 국가별 사이즈 조견표를 꼭 확인해 보자!!

 

여성패션소비심리 발표주제 고..
여성패션소비심리 발표주제 고.. by Pengdo-oing 저작자 표시비영리

 

* 여성복 사이즈

 한국1 

 44

55 

66 

77 

 88

 한국2

 85

90

95 

100 

105 

 미국1

 2

4/6 

8/10 

12/14 

16/18 

 미국2

 XS

XL 

 유럽

 36

38-40

42-44 

44-48 

50-52 

 가슴둘레(in)

 32

33-34

35-37 

38-40

42

 허리둘레(in)

 24

25-26

27-29

30-32

34

 엉덩이둘레(in)

 36

 35-36

37-39

40-42

44

 

미국 사이즈는 그래도 익숙하지만

유럽 사이즈는 쉽게 눈에 안 들어 온다.

한국 44를 생각하고 유럽에서 구입했다간 낭패를 볼 것 같다.

 

* 여성신발 사이즈  1/2

한국

 230

 235

240 

245 

250 

255 

260 

265 

270 

275 

280

285

290 

미국

 6

 61/2

 7

71/2 

81/2 

91/2 

10 

101/2 

11 

111/2 

12 

영국

 31/2

 4

 41/2

51/2 

61/2 

71/2 

81/2 

91/2 

유럽

 361/2

 37

 381/2

39 

40 

401/2 

41 

42 

421/2 

43 

441/2 

45 

451/2 

일본

 235

 240

245 

250 

255 

260 

265 

270 

275 

280 

285 

290 

295 

일본은 한국보다 한치수가 크다. 이렇게 해서라도 극복하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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