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갑부들의 돈 안드는 자녀 교육 방법



빌 게이츠, “컴퓨터보다 책을 먼저”


워런 버핏, “아버지의 재산에 신경 쓰지 말 것”


록 펠러, “허튼 데 돈 쓰지 마라”


샘 월턴, “벌수록 절약하라”


리카싱, “젊어 고생은 인생의 자양분



빌 게이츠 “정보광이 되거라”


빌 게이츠의 부모는 부자였다. 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은행가 집안의 딸이었다. 빌 게이츠는 부모를 삶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 빌 게이츠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은 ‘지식의 보고’였다. 빌 게이츠는 “부모님은 항상 많이 읽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격려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정보의 수집 대상은 ‘책’으로 삼도록 했다. 빌 게이츠는 일곱 살 때 부모가 사준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결심했다. 그 후 전기, 과학책 등으로 독서 범위를 넓혀갔다. 현재 시애틀에 있는 빌 게이츠의 집에는 1만4000여권의 장서를 소장한 개인 도서관이 있다. 빌 게이츠는 “내 아이들에게 당연히 컴퓨터를 사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워런 버핏 “독립심을 키워라”


워런 버핏은 2006년 6월 440억달러(약 41조원)에 달하는 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워런 버핏 세 자녀의 반응이었다. 기부 계획을 발표하고 며칠 후 셋은 미국 ABC방송에 출연했다. 진행자가 “내 돈은 어디 있냐고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않았냐”라고 질문했다. 첫째 딸 수전은 “정말로 엄청난 재산을 물려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신나간 행동일 것”이라고 답했다. 세 자녀는 미소를 띠고 농담까지 섞어가며 아버지의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워런 버핏의 자녀는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재산에 신경쓰지 말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에 맞춰 자신의 삶을 구상하고 만들어왔다.

 

록펠러 “짠돌이가 돼라“


록펠러 2세는 자녀들에게 ‘짠돌이’식 경제교육을 시켰다. “윈(넷째 아들), 이번 주도 저축할 돈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존(첫째 아들)을 봐라. 허튼 데 돈을 쓰지 않고 남겨서 남은 돈으로 저축과 기부까지 하지 않았니?” 이런 식의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다. 록펠러 2세는 일주일 단위로 용돈을 주면서 사용처를 정확하게 장부에 적도록 했다. 록펠러 2세는 일곱 살 전후부터 용돈을 줬는데 일주일에 30센트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성실하게 용돈을 관리했는가 따져서 용돈 액수를 늘려갔다. 당시 자녀의 친구들은 한 주에 1달러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 록펠러 2세는 자녀들에게 엄격한 용돈 교육을 시킨 이유에 대해 “나는 항상 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망가질까봐 걱정했다.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알고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지 않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샘 월턴 “절약의 가치를 배워라”

 

월마트 본사는 미국 아칸소주 벤턴빌에 있다. 월마트는 본사가 벤턴빌에 있는 이유는“대도시는 사무실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월마트 방문센터엔 생전에 그가 손수 몰던 픽업트럭이 전시돼 있다. 붉은색 트럭 좌우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트는 가죽이 아닌 천이다. 샘 월턴은 픽업트럭을 탄 이유를 “롤스로이스 같은 고급 승용차엔 개를 데리고 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샘 월턴은 자녀에게도 절약의 가치를 물려주려고 노력했다. 자녀들이 가게에 나와 일하게 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 용돈을 줬는데, 용돈 액수는 친구들이 받는 것보다 적었다. 현재 월마트의 회장은 샘 월턴의 장남인 롭 월턴이다. 롭 월턴의 사무실은 큰 책상 하나 들어가면 사무실이 꽉 찰 정도다. 출입문 외에는 사방이 막혀 있고 창문도 없다. 아버지의 절약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리카싱 “세상사의 어려움을 깨달아라”


리카싱은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청쿵실업의 이사회를 참관하도록 했다. 하루는 이사회에 들어온 두 아이가 울 기시작했다. 논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서로 싸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리카싱은 “울지 마라. 논쟁을 하는 것은 사업을 위한 것이다. 사리는 논쟁을 하지 않으면 명확해지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리카싱이 아이들을 이사회에 나오게 한 이유는 후계를 위한 게 아니었다.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체험교육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리카싱은 두 아들을 열 다섯 살에 미국과 캐나다로 유학 보냈다.두 아들은 홍콩 갑부집 자식이었지만 자전거로 통학하고 골프장 캐디 등을 하면서 용돈을 버는 등 고생을 하며 유학해야 했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인생과 사업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는 게 리카싱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