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0월

우리는 겨울을 맞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해 싸웠다. 우리는 따뜻한 시간에 매달렸다. 해질녘이면 아직 하늘에 남아 있는 해를 조금이라도 더 잡아보려고 애썼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제 저녁, 해는  복잡하게 뒤섞인 공장 굴뚝과 전선들, 지저분한 안개 속으로 어쩔 도리 없이 가라앉아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한겨울이었다.

지난 겨울을 여기서 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몇 달 동안, 그러니까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우리들 열 명 중 일곱 명은 죽는다는 뜻이다. 죽지 않은 사람은 매 순간, 매일매일,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죽이 배급될 때까지 끊임없이 근육을 긴장시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추위에 저항하기 위해 두 손을 겨드랑이 안에 끼워야 할 것이다. 빵을 주고 장갑을 장만해야 할 것이고, 장갑이 해지면 수선하느라 밤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 밖으로 먹을 것을 가지고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막사에서 각자 손바닥만 한 바다가을 차지하고 서서 식사를 해야 할 것이다. 침대에 기대어 먹는 것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 손이 터질 것이고, 붕대를 얻으려면 매일 밤 눈보라 속에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배고품이 한 끼를 굶은 사람의 그것과 같지 않듯이, 우리의 추위에도 특별한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허기'라는 말을 쓴다. '피로', '공포', '고통'이라는 말도 쓴다. '겨울'이라는 말도. 하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것들이다. 자기 집에서 기쁨을 즐기고 고통을 아파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자유로운 단어들이다. 만일 수용소들이 좀더 오래 존속했다면 새로운 황량한 언어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 속에서 쳐츠와 팬티, 올이 성긴 천으로 만든 윗도리와 바지만 입은 채, 더할 수 없이 허약해지고 굶주린 육체로, 종말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하루 종일 노동하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p. 188-189.

이것이 인간인가
국내도서>소설
저자 : 프리모 레비 / 이현경역
출판 : 돌베개 200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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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기차길

최종 목적지를 향해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바램과는 전혀 무관하게 기차는 힘차게 운동하며 굉음을 낸다.

'최종 해결'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고 그렇게 달려 온 죽음의 땅 '아우슈비츠'



그들을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은 광활한 자연 뿐 이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더욱 야속하게 느껴진다. 

오랜 반려 동물이자 친구인 강아지(경비견)의 사나운 울부짖음은

털석 주저 앉아 한없이 목 놓아 울고 싶은 감정을 통제 해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우슈비츠 마지막 정차역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부조화다. 

찬란하게 사라져가는 석양이나, 

바람에 자유롭게 날리는 잡초나, 

이런 외딴 곳에 철길이 놓인 것과, 

수 많은 막사들, 

그 주위를 둘러 쌓고 있는 철조망들, 

그 위로 날아 가는 새들과 하늘들... 그 모든 것이 부조화다.

아우슈비츠 철조망 


가장 큰 부조화는 무슨 생각으로 그 안에 사람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최종 해결'이라는 미명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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