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의 슬픔을 딛고 일어 선 독일 드레스덴 

[독일 여행: 드레스덴]


1945년 2월 13일 영국군의 랭카스터 폭격기는 독일의 드레스덴을 향하게 됩니다. 과거 작센 군주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뽑는 선제후 중 하나였으며, 작센 왕국의 수도가 드레스덴이었습니다. 


"엘베의 피렌체(Florence on the Elbe)"로 불렸던 유서 깊은 이 도시는 2차 대전 당시 대규모의 폭격을 피해왔습니다. 공업 도시이지만...


군사적 시설 보다는 아름다운 자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역사적 유적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군사적 상황이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더 이상 폭격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드레스덴 공습을 제안했고, 결국 엘베의 피렌체 드레스덴을 향해 폭격기가 날아 가게 됩니다.



랭카스터 폭격기랭카스터 폭격기


베를린 남방 160Km 떨어진 드레스덴을 폭격하는 일은 1945년 2월 13일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독일군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하기 14주 앞선 시기였습니다.  


영국군 랭카스터기 2개 제파가 공급을 가했는데, 제1파는 234대로 구성되어 17분간 폭격을 실시했으며, 3시간뒤 538대로 구성된 제2파가 도착하여 번지고 있는 화재지역의 주변부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영국 폭격기는 총 2556톤의 폭탄을 투하하였는데, 폭탄의 70%가 소이탄이었다.

소이탄의 특성상 모든 방공호와 지하실까지도 540℃까지 상승하면서 순식간에 불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방식의 폭격은 불타기 쉬운 목조가옥이 많은 오래된 도시를 공격할 때의 표준무장 탑재방식이었습니다. 


영국 공습 10시간 후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고, 정오 직후 B-17 311대가 레이더 조준 폭격을 감행하여, 철도역과 조차장에 771톤의 폭탄을 투하하게됩니다. 그 결과 드레스덴의 꽃 피운 18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들이 녹아 내려야했습니다.


드레스덴 폭격드레스덴 폭격 장면



당시 드레스덴은 어떤 공습에 대해서도 무방비 상태였는데, 이미 고사포는 동부전선에 보내진 상태였고, 야간전투기 부대가 있었지만 연료 부족으로 사단사령부 허가없이 이륙이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그만큼 전쟁의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 


또 이상한 소문이 퍼졌는데... 

연합군이 승리하면 독일 수도를 드레스덴으로 옮긴다는 이야기와 처칠의 친척이 드레스덴에 산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누구도 폭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사실로 다가와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드레스덴에는 동부전선에서 피난 온 사람으로 인해 63만이던 인구가 100만을 웃도는 수준으로 팽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곧 더 많은 사상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연합군의 개발한 폭탄 이름이 '블록버스터'였는데, 요즘도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린 영화 대작을 가리켜 '블록버스터'라고 합니다.


드레스덴 폭격 장면


드레스덴 폭격 이후 모습


폭격 후 희생자는  최초 발표에서 250,000명으로 보고되었으나, 사고 후 조사에서는 135,000명으로, 후일 연합군 측 발표에서는 38,0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민간이 희생과 전쟁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J.R.R 톨킨('반지의 제왕'의 저자)은 셋째 아들이 RAF에 복무했는데 그의 편지에는 영국공군의 폭격을 비난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는 스테이크를 즐기는 사람이 도살 과정을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 민간인 폭격에 참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으며 이런 방식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인류 모두에게 나쁜 일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폐허가 된 드레스덴을 내려다보는 동상. '천사'가 아니라 '친절'을 의인화한 동상폐허가 된 드레스덴을 내려다보는 동상으로 '천사'가 아니라 '친절'을 의인화한 동상이라고 한다.


드레스덴 폭격 후 모습과 현재 모습드레스덴 폭격 후 당시의 모습과 현재 모습


현재 드레스덴의 폭격의 폐허 속에서 재건한 궁전, 성당, 박물관은 복원되어 있습니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현무암 덩어리처럼 시커먼 모습입니다. 그 이유는 불에 타서 그을린 잔존물로 복원했기 때문입이다. 


드레스덴에는 그 슬픔 만큼이나 중요한 예술 작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입니다. 그 이외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도 있습니다.


시스티나의 마돈나시스티나의 마돈나 - 라파엘로


또한 바그너와 베버의 음악을 간직하고 있는 이 유서 깊은 도시는 

2차 대전의 큰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드레스덴의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로 웅장하면서 장관을 이룹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작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높이 8m에 길이 약 100m 정도입니다.

1870년대 그려진 이 벽화는 세계 3대 도자기 브랜드로 꼽히는 마이센 자기 타일(약 25,000개)에 그라피토(sgraffito)기법으로 그려 넣은 벽화입니다. 

총 등장 인물 93명 중 33명이 왕자를 비롯한 귀족으로 드레스덴에서만 볼 수 있는 자기 벽화이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 '군주의 행렬' 벽화


독일 드레스덴 카톨릭 궁정 교회


독일 드레스덴 카톨릭 궁정 교회 작센주 최대의 교회로 1738년~1754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독일 드레스덴 카톨릭 궁정 교회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하우스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하우스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하우스


드레스덴 광장


드레스덴 광장


츠빙거(Zwinger) 궁정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Zwinger) 궁정은 작센 폴란드 왕 아우구스트왕에 의해 1710~1732년 지어진 궁전입니다.
바로크 궁전의 걸작이라 불리는 츠빙거 궁전은 동서남북 방향 각기 다른 모양의 건축물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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