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프르제미슬 왕가는 9세기 말 독자적인 통합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리부셰 공주는 탁월한 리더십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리부셰는 자신의 남편으로 비천한 농부를 부족의 통치자로 세웠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그리고 400여 년의 긴 통치를 하게 된다. (성 바츨라프와 프르제미슬 오타카르 2세도 리부셰의 혈통이다.)


비세흐라드 공원에는 리부셰 공주와 남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오타카르 2세가 전하한지 얼마 되지 않은 1306년, 왕권은 프르제미슬에서 룩셈부르크가로 넘어갔고, 이 가문에서 체코 프라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카렐 4세가 나오게 된다.


프라하 어딜 가든 카렐 4세의 눈부신 업적을 확인할 수 있다.


1526년 이후 프라하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1620년 프라하 서북쪽의 빌라호라 전투에서 신교운동을 하던 체코 군대가 오스트리아 카톨릭 군대에 패함으로

체코 왕국은 독립을 빼앗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10월 28일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가 끝난다.


300여 년 만에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은 1939년 나치점령 전까지 찬란한 문화,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45년 전후 혼란시기를 거쳐 1948년 소련의 간섭하에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침체에 빠진다.

1989년 벨벳혁명으로 다시 자유국가가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한 체코는 2005년 EU멤버가 된다.



켈트족이 프라하 정착민을 보이(Boii), 보이오하에뭄(Boiohaemum), 보헤미아(Bohemia)라고 불렀다고 한다.

체코를 보헤미아라 부르는 것도 이것에 유래한다.


프라하라는 이름에는

'문지방'(prah)이나 '언덕'(little hill), '불로서 숲을 태운다'(praziti), '강물의 소용돌이'(prahy) 등의 의미가 있다. 

프라하는 940~950년대 독일 연대기 작가와 아랍여행객에 의한 무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초로 프르제미슬 통치하의 프라하에 대한 기록을 남긴 국제적인 관찰자는 야쿱이라는 박학한 유대인으로,

그에 의하면,


프라하는 러시아와 터키 상인, 모슬렘족과 유대인들이 질 좋은 상품을 구입하려 오는 곳일 뿐 아니라

음식물이 싸고 풍부하며 부유한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프라하에는 골렘 전설 등 유대인에 얽힌 전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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