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그 '장소'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지도도, 직감도 필요하지 않았다. 수 많은 깃발들은 마치 고지 점령을 이끄는 기수들 같았다. 물론 깃발들은 인파로 인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전진할 뿐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로 한 일행을 이끄는 깃발을 보았다. 순간 우리는 그 깃발에 매료되어 그 일행 꽁무니를 따라 붙었다. 이미 지친 사람들을 뒤로 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다. '모세의 기적'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저지도 없이 입구쪽으로 돌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깃발을 든 기수병은

길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병사에게 거침없이 다가섰다. 

그리고 왕의 명령서를 꺼내 들었다. 저건 뭐지???


온라인으로 단체 예약[각주:1]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소속 불명의 우리 가족 이름은 있을리가 없었다.


좀 더 정보를 알았다면 그래서 온라인 예약을 알았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니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여유를 가지고 줄을 서지 않았을까?


이미 눈으로 그 길이를 확인한 우리로써는 되돌아 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순간 유모차를 무기로 들이 밀기로 결정했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이 말만을 외치면 앞으로 나아갔다.

가슴이 떠질 것 같은 우리 가족들의 만행을 여유로운 사람들이 기꺼이 눈 감아 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묵인했다기 보다는 아들의 위한 배려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가 주문해서, 바치오 폰텔리가 설계를 했고 조반니 데 돌치가 건축했다. 

1483년 8월 15일에 완성(실제 공사의 끝은 1481년으로 본다)을 했다. 


예배당은 길이가 40.23미터, 폭은 13.40미터, 그리고 높이는 20.70미터로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파괴한 '솔로몬의 성전'의 세로 높이 2배 가로 3배의 크기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신앙의 형태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왜냐하면 거장들의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 '기를란디오', '코시모 로쎌리', '씨뇨렐리', '라파엘로', '페루지노', '핀투리끼오', 그리고 '미켈란젤로' 등등 당대의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량을 그곳에서 뽐냈으리라. 


사실 완공 당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없었다. 


21년이 지난 후 1504년 지반침하로 남쪽 벽이 바깥으로 기울면서 천장이 갈라지고 말았다.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지반 이동을 억누르고 천장 벽돌과 마룻 바닥에 수십 개의 쇠막대기를 박아 넣어 더 이상의 균열을 막았다.

1504년 가을 다시 개방했지만 균열로 벽돌을 채우고 석고를 바른 탓에 천장화의 일부(북서쪽)가 비뚤 거리는 흰선을 그대로 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사건을 계기로

걸작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1. 온라인 정보(http://mv.vatican.va) 온라인 예약(http://biglietteriamusei.vatican.va/musei/tickets/do?weblang=it&do)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프린터해서 가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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